[신나는 공부]“3·1 운동 몰라도 3등급은 받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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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필수 한국사, 쉬운 문제의 역설

2017학년도 수능부터 모든 수험생이 필수로 치르는 한국사. 올해 치러진 세 번의 학력·모의평가 모두 한국사가 쉽게 출제되자 한국사를 편법으로 공부하는 수험생이 늘고 있다.

2017학년도 수능부터 모든 수험생이 필수로 치르는 한국사. 올해 치러진 세 번의 학력·모의평가 모두 한국사가 쉽게 출제되자 한국사를 편법으로 공부하는 수험생이 늘고 있다.
‘한국사 공부할 필요 있나요? 책의 반은 찢어버리고 반만 볼 겁니다.’ ‘전근대사나 근현대사 둘 중 하나만 보세요.’ ‘정치사만 봐도 충분합니다. 경제·사회·문화사는 버리세요.’

서울의 고3 박모 군은 최근 수능 한국사 시험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한 온라인 입시커뮤니티에 들렀다가 이런 게시글을 보고 안도했다. 박 군은 “올해 수능부터 필수로 지정되는 과목이 하필 가장 자신이 없는 한국사라는 사실에 불안했지만 다른 수험생들도 한국사 공부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고 말했다.

박 군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해 최근 치러진 6월 수능 모의평가 이후 ‘공부를 깊이 있게 하지 않아도 한국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까지 이어졌다.

박 군은 “6월 모의평가에서 한국사 3등급(30∼34점)을 받아 걱정을 덜었다”면서 “학교 한국사 선생님들도 한국사보다는 다른 과목에 집중하라고 말하는가 하면 ‘이제 한국사는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다”고 전했다.

쉬운 한국사, 편법으로 공부해도 ‘3등급’


2017학년도 수능부터 모든 수험생이 필수로 치르는 한국사. 올해 치러진 세 차례의 학력·모의평가에서 모두 매우 쉽게 출제되자 한국사를 편법으로 공부하는 수험생이 늘고 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특정 시대의 역사만 복습하거나, 정치사만 공부하고 경제·사회·문화사는 아예 공부하지 않는 식. 깊이 공부하지 않아도 대부분 대학이 만점 요건으로 두는 ‘3등급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의 고3 정모 양은 “6월 모의평가에서 총 20문제 중 10번까지만 푼 친구들도 있다”면서 “서울대 정시에서 한국사는 3등급까지가 만점인데, 6월 모의평가를 기준으로 아는 문제만 풀고 나머지는 다 찍어도 3등급은 받는다”고 말했다.

전남의 고3 김모 군은 “조선시대 이후는 암기하기 힘들고 재미도 없어서 고려시대까지만 공부했는데 이번 6월 모의평가에서 2등급을 받았다”면서 “어려운 부분을 굳이 공부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올해 수능 출제경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6월 모의평가 한국사는 시험을 치른 수험생의 28.95%가 1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쉬웠다. 3등급 이상은 전체의 62.42%. 이순신이 활약한 전쟁이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임진왜란’ ‘병자호란’ ‘만주 사변’ ‘청·일 전쟁’ ‘러·일 전쟁’이 선택지로 제시되는 문항(4번)이 가장 높은 배점인 3점짜리 문항이었을 만큼 쉬웠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하다는 평가다.

서울의 한 고교 한국사 교사는 “이번 6월 모의평가 한국사는 초등생이 만화로 된 한국사 책을 한 번 읽고 풀어도 1등급을 받을 만큼 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하향 평준화

결국 역사 인식의 수준을 높이겠다며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한 정부의 당초 의도가 무색해지고 있는 상황. 오히려 예전보다 학생들의 한국사 인식 수준은 ‘하향 평준화’ 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이번 6월 모의평가 한국사 5번 문항. 3.1 운동이 발생한 시기를 묻는 이 문항은 ‘3.1 운동의 영향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도 맞히는 문제다. 그런데 주요 입시업체들이 가채점 결과를 바탕으로 내놓은 문항별 오답률 통계를 종합하면 이 문항은 10명 중 4명이 맞히지 못해 오답률이 가장 높은 문항 중 하나로 꼽혔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이후 3.1 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잘못 아는 수험생이 부지기수라는 얘기다.

한 한국사 강사는 “많은 학생이 역사적 사실들이 어떤 선후 관계를 맺는지 파악하지 않은 채 단순히 ‘3.1운동 1919년’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식으로 단순 암기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며 개탄했다.

인강 ‘포인트 강의’ 수요 늘어

한국사가 쉽게 출제되는 이유는 사교육 수요를 줄이기 위함이다. 2013년, 교육부가 2017학년도 수능부터 한국사를 필수로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뒤 ‘사교육이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일었던 것. 이에 교육부는 이듬해 “한국사 사교육 수요를 줄이기 위해 한국사를 쉽게 출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인터넷 강의 업체 한국사 강사는 “기본적인 한국사 실력을 갖추지 못한 중위권 이하 수험생들이 한국사를 더 빠르고 쉽고 간편하게 끝낼 수 있는 이른바 ‘포인트 강의’를 찾는 경우가 늘었다”면서 “한국사 인터넷 강의는 보통 40강 가량으로 구성되지만 최근 8강으로 된 강의를 내놓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실제로 주요 인터넷 강의 업체들은 ‘10시간으로 끝내는 한국사’ ‘5강으로 개념 꽉 잡아드립니다’ ‘단 한 강좌로 끝내는 개념완성’과 같은 포인트 강의를 최근 개설하고 있다.

김재성기자 kimjs6@donga.com·최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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