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전규찬]안전사고 교훈을 잊지 말고 장기개선책을 찾는 전문가 절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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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찬 영국 러프버러대 디자인스쿨 교수
전규찬 영국 러프버러대 디자인스쿨 교수
우리 사회의 안전은 보는 시각에 따라 처방이 달라진다.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첫 번째 관점에서 보면 안전사고는 안전수칙을 무시하는 몇몇 몰상식한 작업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별 사고 없이 일을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고 발생 시에 안전수칙을 무시하는 작업자의 책임은 엄히 물어야 한다. 사고는 또 비용 절약만 우선시하고 안전을 도외시하는 악덕기업 탓에 근로자들이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악덕기업의 책임도 엄히 물어야 한다. 이렇게 잘못한 사람이나 기업의 책임을 엄하게 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 악덕기업이든 몰상식한 작업자들이든 더 조심하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안전한 사회를 달성할 수 있다.

언뜻 다 맞는 얘기인 것 같고, 앞으로 많은 정책과 법들이 이런 방향으로만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과연 이런 간단한 관점대로 할 경우에 우리는 안전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두 번째 관점에서 보면 작업자들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작업자들이 어떤 작업을 하는지, 어떤 장비가 주어지는지, 어떤 정보를 어떤 식으로 받는지,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작업자가 어떤 절차를 통해 고용되는지, 성과가 어떻게 평가되는지, 어떤 근무시간제로 관리되는지, 건강상태는 어떻게 관리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결국 안전수칙을 무시하는 배경에는 어떠한 인적, 시스템적인 요인들이 있는지를 이해하고 장기적인 개선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해진다.

기업들의 상황을 봐도 역시 간단하지 않다.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모든 조직은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다 보면, 안전 말고도 여러 가지 위험요소에 시시각각 대응하는 상황에 접하게 된다. 물론 많은 권한이 있는 경영자들에게는 엄격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책임자 색출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기업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여 장기적인 개선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안전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크고 작은 사고에서 어떻게 끊임없이 학습하고, 개선된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의 한 예로서 영국에는 항공사고, 열차사고, 해양사고의 조사를 담당하는 세 개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사고 조사기관이 있다. 기관마다 30∼50명의 상근 전문가들이 모여 사고 발생 시 책임자 색출과 기소가 아닌, 안전사고 뒤에 있는 인적, 기술적, 시스템적인 요인들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을 한다.

우리나라도 장기 비전을 갖고 사고 뒷면에 있는 인적, 기술적, 시스템적인 요인들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전문성을 키워가고, 사고 분석과 학습을 통해 안전 정책과 법들이 제정되기를 바란다.

전규찬 영국 러프버러대 디자인스쿨 교수
#안전사고#사고 조사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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