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계남정미소’ 4년 만에 재개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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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마을의 기억 보존하자”… 28일부터 젊은 작가 사진전 개최
연기백-홍진훤 등 개인전도 이어져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고 공유해 온 공동체 박물관인 전북 진안의 ‘계남정미소’가 휴관 4년 만에 젊은 작가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전시를 재개한다. 계남정미소 제공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고 공유해 온 공동체 박물관인 전북 진안의 ‘계남정미소’가 휴관 4년 만에 젊은 작가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전시를 재개한다. 계남정미소 제공
마을의 기억을 보존하고 나누어 온 공동체 박물관, 전북 진안의 계남정미소(관장 김지연)가 2012년 기약 없는 잠정 휴관에 들어간 지 4년 만에 전시를 재개한다. 계남정미소를 살려 보자고 전국에서 모인 젊은 미술가들의 자발적 움직임 덕분이다.

계남정미소는 전주에 사는 사진작가 김지연 씨(68)가 2005년 쓰려져 가던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의 낡은 정미소를 사들여 수리한 뒤 이듬해 문을 열었다.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자 근대 농업 발달을 견인했던 정미소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다. 김 관장은 이전부터 무너져 가는 시골 정미소와 구식 이발관, 새마을운동의 유산인 근대화상회(구멍가게) 등 사라져 가는 것들을 카메라로 기록해 오던 터였다.

공동체 박물관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옛날 정미소가 마을의 사랑방 구실을 했듯이 이곳이 옛 기억을 보존하고 나누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김 관장은 이곳에서 주변 마을 주민들의 묵은 앨범에서 꺼낸 빛바랜 사진과 집 안 깊숙이 박혀 있던 오래된 물건들을 모아 전시했다. 인근에 댐이 생기면서 수몰된 마을의 옛 모습과 폐교의 졸업 앨범도 전시했다. 전시만 22차례에, 주민들을 위한 문화행사와 주말 농사 등 각종 체험 행사까지 열렸다.

주민들의 삶을 담은 ‘계남마을 사람들’, ‘농촌을 지키는 사람들’, ‘할아버지는 베테랑_6·25 참전 용사’ 등 전시는 참신한 발상과 지역 밀착 기획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은 계남정미소를 ‘쌀 대신 추억을 찧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혼자서 기획부터 자료 수집, 사진 촬영, 도록 제작 등 전시에 필요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김 관장은 2012년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그 대신 2013년 3월 예술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던 전주시 서학동 골목 끝에 있는 한옥을 개조해 전시장으로 꾸며 ‘서학동사진관’ 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먼지가 소복이 쌓여 가던 계남정미소가 28일 다시 빗장을 연다.

“언제 다시 시작하리라는 기약도 없었지만 많은 분께서 계남정미소를 잊지 않고 계시더군요. 고맙게도 최근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계남정미소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고민과 시도들이 이어져 전시를 열게 됐습니다.”

김현주 기획자와 고천봉 김주원 안초롱 윤태준 이미지 이택우 주용성 등 젊은 사진작가 7명은 28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자기들의 관점으로 현실을 면밀히 기록한 사진전을 선보인다. 28일 오후 6시부터는 계남정미소에서 작가와의 대화 등이 진행된다. 서학동사진관의 행보를 응원하기 위해 예술인들이 모여 진행했던 ‘서학동 언니 프로젝트’의 2탄이다. 연기백 홍진훤 오석근 작가 등의 개인전도 10월까지 이어진다.

작가들은 계남정미소의 지역적·공간적 특성과 함께 동시대 역사성에 주목했다. 김현주 기획자는 “계남 정미소는 단순히 색다른,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예술과 공동체에 대한 자생적인 논의와 실천이 가능한 곳이어서 예술가로서 부담스럽지만 시도하고 싶은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일시적이나마 공간이 다시 운영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과제는 많다. 노후한 건물의 관리 문제와 앞으로 언제까지 또는 어떻게 명맥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도 고민거리다.

김 관장은 “2013년 자치단체의 협조로 사립박물관 등록도 추진했지만 공간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조건에 맞춰 보수를 해야 해서 포기했다”며 “공공성을 지닌 활동인 만큼 최소한의 공간 관리라도 지원되길 바라고, 이러한 시도를 사람들이 소중히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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