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 구입, 공립학교도 거부 움직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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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보고 않는 방식으로 불만 표출

“필요하면 학교에서 사는 거지. 왜 책 사는 것까지 하라 마라 하는지 모르겠다.”(서울 A고 교장)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비공식적으로 논의했는데, 반대가 많아서 실제로 구입할지는 다시 논의해봐야 한다.”(서울 B중학교 교장)

서울시교육청이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하라며 일선 중고교에 예산을 내려보냈지만 일선 학교들이 집행을 거부하거나 보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시교육청에 명확하게 구입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학교 중 상당수도 실제로는 구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C고 교장은 28일 “공립학교들은 교육청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들기 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을 뿐 불만이 많다”면서 “사립학교도 구입하지 않으면 감사를 한다는 소문이 도는 등 분위기가 좋지 않아 조용히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예산은 편성하지만 실제 구입은 하지 않거나 구입을 하더라도 도서관 비치는 하지 않겠다는 것.

서울디지텍고가 11일 친일인명사전 구입 거부 의사를 밝히는 등 공식적으로 시교육청에 이 사전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밝힌 학교만 10곳에 달한다. 22개 자율형사립고도 거부 의사를 밝혔고 거부 의사를 공개하지 않았을 뿐 정산 보고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거부하거나 구입을 미루는 공립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친일인명사전 구입 논란이 일부 지방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북도의회 교육위원회는 26일 도내 각급 학교에 친일인명사전 배치와 활용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28일 밝혔다. 도교육위원회는 올 5월에 열리는 추경에서 관련 예산을 통과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전북도교육청은 “성명서가 나온 만큼 내부적으로 검토하겠지만 친일인명사전을 요청하는 학교에만 보내줄 것”이라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펴낸 이 사전은 친일파 선정 기준이 자의적이고 객관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써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비판한 언론인 장지연이 친일 인사로 분류된 게 대표적이다. 또 6·25 전쟁영웅으로 꼽히는 백선엽 장군과 한국인 첫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신부 등은 1949년 반민특위의 친일행위 피의자 명단에는 없었지만 친일인명사전에는 수록됐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친일인명사전#공립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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