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0년간 동화책에 그려진 아빠의 변화된 모습 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집밖의 회사원서 집안의 딸바보로
성균관대 500여권 분석 논문

“아우 많이도 쌌네!” 웃으며 기저귀 갈아주는 캥거루형 아빠. 뜨인돌 어린이 제공
“아우 많이도 쌌네!” 웃으며 기저귀 갈아주는 캥거루형 아빠. 뜨인돌 어린이 제공
가족들과 바다에 놀러 갈 준비에 한껏 부푼 딸아이가 갑자기 “신발 한 짝이 안 보여요!”라고 칭얼댄다. 이럴 때 아빠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러게 아빠가 뭐랬니? 물건을 제자리에 놔두라고 했잖아!”라고 목소리를 높일까?

“아니요, 우리 아빠는 안 그래요. 나와 함께 집 안 구석구석을 찾아주시죠!”(‘아빠는 너를 사랑해!’ 중)

전통적인 권위 대신 친근함과 다정함이 ‘요즘 아빠’의 대세다. 이는 아이들의 ‘세상을 보는 교과서’인 그림책에도 반영됐다. 최근 그림책 속 아버지의 모습은 △솔직하고 다정다감한 △친구같이 놀아 주는 △‘딸바보’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박소윤 씨가 박사학위 논문(지도교수 현은자)에서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인기를 끈 국내외 그림책 500여 권을 분석한 결과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딸바보’가 부쩍 늘었다는 사실이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국내 그림책에서 딸하고만 등장하는 아버지는 전체의 3.9%에 그쳤다. 하지만 2001년 이후 이 비율은 40% 안팎으로 크게 늘었다. 아빠는 이제 딸과 단둘이 낚시도 하고(‘나도 아빠를 사랑해요’), 밤에는 머리맡에서 잠들 때까지 책도 읽어 준다(‘왜요?’).

장롱 속의 이불을 꺼내 딸과 신나게 놀아주는 ‘딸바보’ 아빠. 시공주니어 제공
장롱 속의 이불을 꺼내 딸과 신나게 놀아주는 ‘딸바보’ 아빠. 시공주니어 제공
아버지들의 감정 표현이 훨씬 풍부하고 따뜻해진 점도 독특하다. 과거 그림책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가부장적인 성격의 ‘양복 입은 회사원’ 일변도였다. 하지만 요즘 그림책에는 애정 표현에 적극적인 아버지가 늘고 있다. 실망하고 슬퍼하는 등 솔직한 모습도 보인다. ‘아들아, 아빠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에서 아버지는 퇴근 후 잠든 아이에게 “아침에 네게 잔소리한 것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아직 일부에 불과하지만 보육·가사활동을 하는 모습도 드러난다. ‘돼지책’에는 집안일에 손도 대지 않던 아빠와 아이들이 음식을 만들어 엄마를 기쁘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과거와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은 아버지의 등장 배경이 집 밖에서 ‘안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책에서 아버지가 집 안에서 등장하는 비율은 1990년대 후반 37%에서 2010년 이후 51%로 높아졌다. 과거엔 아버지가 ‘가정에 없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의미다. 자녀와 놀아주는 모습도 많아졌다. 권위를 내세우던 아버지가 이젠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즐기는 친근한 존재로 묘사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아버지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박 씨는 “현대 사회에선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늘고 아버지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다양해지고 있다”며 “아버지가 등장하는 다양한 그림책을 유아들에게 보여 주면 아이들이 나중에 바람직한 부모로 자라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학부모들도 긍정적이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윤선정 씨(43)는 “오늘날 아버지의 모습은 분명 한 가지가 아니다”라며 “이런 모습을 보여 주면 아이들이 더 쉽게 공감하고 현실에 대한 인식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회사원#딸바보#논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