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지원 없는 한국… 지카백신 임상 위해 미국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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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업계, 지카바이러스 백신 개발 치열한 경쟁

다국적 제약사들이 앞다퉈 지카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제약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백신 개발 컨소시엄이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임상(인체)시험 승인 절차를 밟기로 한 사실이 4일 확인됐다. 안전성 확보 정도에 따라 허가 절차를 1년 이상 단축해주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유연한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혜택 때문이다.

○ ‘패스트트랙’ 혜택 곳곳에 둔 미국

4일 보건당국과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카 바이러스의 유전자(DNA) 백신을 개발 중인 미국 바이오테크 기업인 ‘이노비오(INOVIO)’와 한국 ‘진원생명과학’ 컨소시엄은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백신 후보 물질의 동물실험을 진행 중이다. 컨소시엄은 이르면 8월경 FDA로부터 임상1상 승인을 얻어 연말에 응급용 백신을 내놓을 계획이다.

컨소시엄이 미국을 택한 일차적인 이유는 투자자를 모으기 쉽고 개발 성공 시 세계 시장으로 직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약사가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신약 개발 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현실을 감안하면, FDA가 제공하는 각종 절차 간소화 혜택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컨소시엄이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FDA로부터 미국에서 메르스 DNA 백신의 임상1상을 승인받았을 때도 FDA는 독성연구 시험을 생략해 줬다. 통상 1년 이상 소요되는 절차다. 기존 신종플루 등의 연구에서 이미 안전성을 검증받은 플라스미드(임상시험에 기본으로 쓰이는 DNA)를 활용했다는 이유였다. 그 덕분에 컨소시엄은 현재 미국 월터리드 육군연구소의 투자를 받아 피험자 75명을 상대로 메르스 백신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FDA는 치명적인 감염병의 백신은 임상3상을 건너뛰고 사용을 승인해 주는 ‘동물실험갈음규칙(Animal Rule)’도 예외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 낡은 법-경험 부족에 발목 잡힌 한국

반면 한국은 DNA 백신에 대해 임상 전 독성연구 시험을 생략한 전례가 없다. 국내에선 관련 연구가 활발하지 않아 업체가 시험 생략을 요청한 사례가 없고 플라스미드의 안전성을 평가할 자료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FDA에 관련 자료도 요청해 봤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이는 복제약을 빠르고 싸게 만드는 데에 치중하는 국내 업계의 풍토, 안전성을 평가할 때 규정 자체에 집착하는 보건당국이 초래한 악순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식약처는 지난해 6월 혁신적 신약의 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특별법을 입법 예고했지만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반발에 막혀 이번 19대 국회에선 처리되지 못할 판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한국보다 신약의 안전성을 더 엄격하게 평가하지만 결정적일 땐 축적된 신약 관련 자료와 경험을 토대로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 준다”며 “정부와 국회가 함께 나서서 신약 개발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이정은 기자
#신약개발#지카백신#지카 바이러스#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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