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아이 19분 방치 사망에도 집유… 안전의식 못따라가는 법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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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車 뒷문 열린 채 운행 참사… 태권도 관장 2심서 감형

양예원 양의 가족은 3월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을 친다. 사진은 거실에 놓인 예원 양의 사진과 생전에 좋아했던 장난감. 양예원 양 가족 제공
양예원 양의 가족은 3월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을 친다. 사진은 거실에 놓인 예원 양의 사진과 생전에 좋아했던 장난감. 양예원 양 가족 제공
“그때 병원에만 바로 갔으면 우리 예원이는 살 수 있었을 텐데….”

예원이 아버지 양모 씨(33)는 아직도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개월 전인 3월 30일 여섯 살 난 딸 예원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예원이는 집에 가기 위해 태권도장 통학차량(스타렉스)을 탔다가 변을 당했다. 운전대를 잡은 관장 김모 씨(37)가 승합차 뒷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출발해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예원이가 떨어진 것이다. 예원이는 머리를 크게 다쳤지만 김 씨는 바로 병원으로 가지 않고 태권도장으로 돌아가 다른 아이들을 내려 준 뒤 119에 신고했다. 사고 발생 약 5분 만이었다.

이후에도 김 씨는 곧장 병원으로 가지 않았다. 집으로 갈 아이들을 다시 태워 태권도장을 출발했다. 예원이는 계속 차량 안에 있었다. 결국 사고가 발생한 지 약 19분이 지난 뒤에야 예원이는 도로 위에서 만난 119차량에 겨우 옮겨졌다. 예원이는 머리 골절에 따른 중증 뇌손상으로 병원 도착 30여 분 만에 숨졌다.

당시 사고 차량은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 규정을 대폭 강화한 일명 ‘세림이법’도 대부분 지키지 않았다. 차량 안에 있던 어린이들은 모두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 통학차량은 관할 경찰서에 신고도 되지 않았다. 안전표지나 표시등 같은 보호 설비도 없었다. 당연히 김 씨는 운전자 안전교육도 받지 않았다.

사고 이후 양 씨는 딸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한시도 떨치지 못했다. 법정에서나마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합의도 거절하고 재판부에 엄벌을 희망했다. 그러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항소심을 맡은 수원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이근수)는 23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김 씨에게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0월 초 열린 1심에서는 금고 1년 6개월이 선고됐었다. 그나마 항소심에서는 오히려 형량이 줄고 집행유예까지 선고됐다.

양 씨는 김 씨가 풀려나는 걸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형량이 적다는 이유로는 대법원에 상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 씨는 “1심 형량 1년 6개월도 적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집행유예가 나온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잃었다”고 탄식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행 경위나 방법, 사고결과 등을 볼 때 죄질이 좋지 않다. 유족과 합의하지 않고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피고 또한 사고로 인한 큰 충격으로 적절한 구호 조치 판단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일 뿐 사고를 은폐하거나 책임을 축소하려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감경 사유에는 김 씨가 1심에서 3000만 원, 항소심에서 1000만 원을 추가로 공탁한 것도 반영됐다. 양 씨는 “우리가 공탁금을 가져갈 것도 아닌데 공탁금을 올렸다는 게 감형 이유가 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면서 울분을 토했다.

어린이 통학차량 사고는 유족이 평생 고통을 겪어야 하고 사회적 파장도 크다. 하지만 법원 판결은 이런 상황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세림이법 마련의 계기가 된 2013년 충북 청주시 김세림 양(당시 3세) 사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김 양을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와 현장 인솔 교사는 각각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2011년 강원 철원군에서 통학차량 하차 중 문에 옷이 끼여 숨진 이모 양(당시 7세) 사고 때도 운전사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허억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어린이안전학교 대표)는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의 안전의식은 높아졌지만 법원은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며 “처벌이 약하면 어린이 생명을 경시할 수도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법원#안전의식#양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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