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업 톡톡]“말레이시아 건너와 6년간 밑바닥 체험… 현지화로 꿈 이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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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석 달 만에 회사대표로 연설… 철저한 성과주의 인상적”

《 청년 취업난이 더는 ‘뉴스’가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2, 3년간 취업 준비에 매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학벌과 스펙이 좋아도 서류전형에서부터 탈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청년들은 오늘도 자괴감을 느끼며 자기소개서를 씁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고자 일부 취업 준비생들은 외국으로 눈을 돌립니다. 해외에서 직장을 구한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취업했을까요? 또 이들은 어떤 점을 만족스러워하고 어떤 점을 아쉬워하고 있을까요? 해외 취업을 준비하거나 해외 취업에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위계질서 엄격한 한국 기업 문화 싫다”
―국내 기업에 취업한 지인들을 보면 기업 문화가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전 내내 회의하며 시간을 끄는가 하면 새벽까지 야근을 시키고도 그날 아침 일찍 무리하게 출근하라는 식이더군요. 전 기계공학을 전공해서 다른 학과보다 국내 취업이 수월한 편이에요. 그래도 전 한국 기업을 고집하지 않아요. 요새 해외 취업과 관련된 특강을 듣고 있어요.(23·여·대학생)

―대기업 종합상사에서 계약직으로 있다가 올해 7월에 퇴사했어요. 상사라서 회사 분위기가 개방적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위계질서가 엄격해 많이 놀랐어요. 게다가 직속 상사가 사내 단체 메신저에 은근히 저를 무시하는 글을 종종 올렸고, 팀원들도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지요. 대학생 때는 그렇게 들어오고 싶던 회사였기에 1년간 버텼지만 막상 다녀 보니 회사에 남아 있고 싶다는 마음이 싹 사라졌어요. 수출·무역 쪽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규모가 작아도 해외에 있는 무역회사를 찾아서 취업해 볼 생각입니다.(26·여·해외 취업 준비생)

―콜롬비아의 무역회사에서 일한 지 석 달 됐습니다. 콜롬비아에 오기 전에는 한국 기업 두 곳을 다녔어요. 한 곳에선 몸이 망가질 정도로 술을 마셨고 다른 곳에서는 주말도 반납하고 일했습니다. 친구 결혼식도 못 가고 소개팅도 두 번이나 미뤘어요. 그렇게 일하다 보니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학교 운동회에나 갈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러던 중 가장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사람이 이렇게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구나 싶었죠. 그 후 남미에서 일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어요. 한국과의 무역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해 콜롬비아로 왔고요. 스페인어가 미숙해 의사소통도 힘들지만 동료들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자주 놀러 나갔는데도 월 생활비가 30만 원일 정도로 물가가 낮고, 무엇보다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축구나 야구를 해요.(30·콜롬비아 무역회사 근무)

“성과로 능력 판단하는 문화가 좋다”
―한국 대기업에 다니다가 싱가포르로 건너와 기업 두 곳을 거친 뒤 현재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싱가포르에선 성별, 인종에 관계없이 능력대로 사람을 판단해요.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됐는데 회사 대표로 연설한 적도 있어요. 이직이 자유로운 것도 장점이에요. 또 조직이 개인의 행복과 발전을 응원하고 독려하는 점도 인상적이에요. 다만 이직과 해고가 잦아서 고용 안정성 측면에서는 한국이 낫습니다. 싱가포르는 철저하게 성과주의로 움직이기 때문에 능력 없는 직원은 가차 없이 잘리기도 해요. 팀이 통째로 사라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능력만 있다면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재취업의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 있죠.(28·여·소프트뱅크 싱가포르 지사 근무)

―특별한 재능도 없었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작은 물류회사에 입사해 평범하게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고자 3년간 다니던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말레이시아에 와서 3개월간 봉사활동을 했죠. 활동이 끝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곧바로 현지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아웃렛에서 3년 동안 매장 관리를 하다가 이후 3년 동안 현지 회사에서 수출입 업무를 맡았고, 6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레이시아 KOTRA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찾아가며 바닥부터 시작했던 모든 경험이 제게 숨은 내공이 된다고 생각해요. 현지 음식을 먹고, 현지인 마을에 집을 얻어,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며 가능한 한 ‘한국 물’을 빼려 했습니다. 해외 취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국 문화를 고집하며 한국 커뮤니티 안에서 사는 것보다 현지에 동화되어 사는 게 훨씬 나아요.(34·여·말레이시아 KOTRA 근무)

―국내 독일계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2년째 근무 중입니다. 대학생 때부터 독일계 자동차 회사에서 프로젝트매니저(PM)로 근무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독일이 자동차산업은 세계 1위이고, 기술자나 장인을 존중하고, 매뉴얼대로 정직하게 일을 진행하는 점도 끌려요.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을 하려면 독일어를 현지인만큼 유창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서른이 지나기 전에 독일로 나가는 게 꿈입니다.(28·여·엔지니어)

“추석 되면 송편이 그리워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내비게이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미국의 수평적인 의사소통 문화가 마음에 들어요. 저는 신입 디자이너지만, 업무 특성상 높은 직급에 있는 분들과 직접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면서 프로젝트를 주도할 기회가 많아요. 한국 기업들보다 자본이 넉넉하니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잘 조성돼 있지요.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외국에서 혈혈단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워요. 물론 미국 추수감사절에 칠면조와 에그녹(크리스마스에 마시는 칵테일)을 먹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지요. 그래도 고향에서 먹는 추석 송편만 할까요?(29·여·UX 디자이너)

―일본 헤드헌터 회사에서 인사 업무를 하며 3년 2개월간 근무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혼자’ 살기에 참 편한 나라입니다. 식당이나 편의점 시설이 1인 가구를 위해 잘 갖춰져 있고, 치안 또한 굉장히 좋지요. 하지만 이런 특성은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있었기 때문에 많이 외로웠어요. 힘든 일이 생기면 얼굴 보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데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었지요. 공허감이 컸습니다. 무엇인가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도 컸어요. 게다가 많은 준비 없이 막연한 생각을 갖고 일본에서 취업했던지라 시간이 흐를수록 의지가 약해졌어요. 일본어 커뮤니케이션도 문제였습니다. 저는 단순히 상대에게 말을 전할 수는 있어도 일상적인 회의에서 제 의견을 적절하게 발언하고 목적을 수행하는 수준까지는 못 갔던 거죠. 언어 문제는 일본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28·여·전 일본 헤드헌터 회사 근무)

―에미레이트항공의 1등석 승무원으로 5년간 일하며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체류했습니다. 급여나 복리후생은 대체로 좋았어요. 하지만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게 무척 힘들었어요. 날씨가 너무 덥기 때문에 모든 활동은 실내에서 이뤄져요. 스키장도, 운동장도, 놀이터도 모두 건물 안에 있어요. 잔디도 있지만 모두 인조예요. 사막이라서 건물 밖 자연환경이라고는 모래바람밖에 없습니다. 영화 세트장에서 사는 느낌이죠. 천연 바람과 맑은 공기를 느끼고 싶었고, 더는 이런 환경에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의복이나 식생활 부분에서 규율이 엄격했던 이슬람 문화 또한 불편하죠. 라마단 기간에는 물도 마음대로 못 마시고 화장실에서 마셔야 합니다.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를 입고 나갔다가 모르는 현지인 여성이 다가와 치마를 확 내리고 욕하는 황당한 경험도 했어요. 이슬람 문화를 지키라더군요. 해외 취업을 하려면 환경적, 문화적인 부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34·여·전 에미레이트항공 승무원)

오피니언팀 종합·임세희 인턴기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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