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新명인열전]“명심보감 강의 20년… 개그맨이라 무시할까봐 더 열심히 준비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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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한학자 변신 김병조씨

‘배추머리 개그맨’에서 대학원 초빙교수로 변신한 김병조 씨가 20일 전남 장성군 북이면 고향집에서 옛 서적을 뒤적이며 밝게 웃고 있다. 김 씨는 “798구절의 명심보감은 유익한 인생지침서”라고 말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배추머리 개그맨’에서 대학원 초빙교수로 변신한 김병조 씨가 20일 전남 장성군 북이면 고향집에서 옛 서적을 뒤적이며 밝게 웃고 있다. 김 씨는 “798구절의 명심보감은 유익한 인생지침서”라고 말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28년 전 ‘배추머리 개그맨’ 김병조 씨는 ‘일요일 밤의 남자’였다. 시청률 60%를 자랑하는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을 진행하며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등 숱한 유행어를 히트시켰다. 한마디로 잘 까불었다. 전라도 말로 하면 ‘귄 있게’(매력 있다는 뜻의 사투리) 놀았다. 대중은 삶의 철학이 담긴 그의 유머에 열광했다. 인기 가도를 달리던 그가 언제부턴가 공중파에서 자취를 감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더위가 한풀 꺾인 20일 그를 전남 장성의 고향집에서 만났다. 살이 많이 빠져 몸이 가벼워 보였다. 트레이드마크였던 ‘배추머리’는 짧게 다듬어져 있었다. 올해 나이 66세. 단정하게 빗어 넘긴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서 ‘한학자’의 풍모가 느껴졌다.

“그동안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TV에 안 나오니까 무슨 병이 들었네, 숨어서 사네 등 말이 많던데 이렇게 멀쩡합니다.” 그는 “어릴 적 꿈꿨던 훈장 노릇을 하면서 여유롭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병조 조선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가 펴낸 ‘김병조의 마음공부’ 상·하권. 김 교수가 청주판 명심보감을 직접 해석하고 풀어 썼다.
김병조 조선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가 펴낸 ‘김병조의 마음공부’ 상·하권. 김 교수가 청주판 명심보감을 직접 해석하고 풀어 썼다.
현재 그의 직함은 조선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다. “1998년부터 평생교육원에서 명심보감 강의를 했으니 벌써 20년이 다 돼 가네요. 시간 날 때마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무원이나 일반인을 상대로 강연도 합니다.” 그가 일정이 적힌 수첩을 보여줬다. 9월 한 달 동안 사흘을 빼고는 모두 강연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일주일 중 수요일이 가장 빠듯하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사는 그는 매주 수요일 새벽 고속철도(KTX)를 타고 광주로 내려온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았어요.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웃음). 항공편은 상황에 따라 결항할 위험이 있잖아요.” 매사가 철두철미하다 보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강의를 거르지 않았다.

그는 오전에 평생교육원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명심보감 강독을, 오후에 학부생과 교육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한다. 그의 강의는 수업을 몰래 듣는 ‘도강생’이 많기로 유명하다. ‘현대생활과 명심보감’을 주제로 한 학부 수업은 3년 전까지만 해도 수강생이 많아 시간대를 나눠 가르칠 정도였다. 김 교수는 중간고사를 치르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에게 양말 한 켤레 사 드리는 것을 숙제로 낸다. 효도는 행동으로 옮길 때 가치가 있다는 명심보감의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는 딱딱한 한자어 속에 감춰진 내용을 특유의 입담과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낸다. 예를 들어 명심보감 제6편인 안분(安分)편을 설명할 때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는 식이다. “안분은 분수를 지킨다는 말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각자에게 주어진 배역이 있다는 뜻이죠. 배역 즉 그 역할에 충실한 것이 바로 분수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김병조의 명심보감’은 1995년 조선대 평생교육원 개설 이후 가장 성공한 강좌로 평가받고 있다. ‘개그맨이 하는 강의다 보니 웃기겠지’ 하며 신청했던 수강생들은 그의 열정과 박식함에 감탄해 외지에서 ‘원정 수강’을 온다. 그의 강의를 12년째 듣는 ‘열성 팬’도 있다. “저한테 개그 무대와 강단은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관객이 곧 학생이고, 대본이 교재니까요. 개그맨이라고 무시할까봐 더 열심히 공부하고 수업 준비를 합니다.”

홀연히 방송계를 떠난 그가 왜 하필 명심보감을 들고 나타났을까. 지난해 말 동양 인문학의 진수인 ‘청주판 명심보감’을 직접 해석하고 풀어 쓴 ‘김병조의 마음공부’ 상·하권(평역)까지 출판했으니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심보감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칼날처럼 벼리고 솜이불처럼 품어야 할 최소한의 도리와 진리들을 다 담고 있습니다. 저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고 재기할 수 있게 힘이 돼 준 게 바로 이 책이죠.”

1987년 인기 절정의 그에게 일생일대의 시련이 닥쳤다. 그해 6월 10일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한 “민정당은 정(情)을 주는 당이고, 통일민주당은 고통을 주는 당”이라는 발언이 화근이었다. 정당 측에서 써준 원고를 별 생각 없이 읽었지만 발언의 대가는 혹독했다. 위협적인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가족이 한동안 도피생활을 해야 했을 정도로 시달렸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고 안구 혈관까지 터지는 바람에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버렸다. 그 후 몇몇 TV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자책감 때문에 더 이상 방송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세치 혀를 잘못 놀려 한방에 ‘훅’ 날아간 것이었다.

좌절의 시기에 의지하고 기댈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배운 명심보감이었다. 명심보감은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고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는 ‘지식 충전소’였다. 1993년 우연한 기회에 KBC 광주방송의 ‘열창무대’ 진행을 맡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온함 삶이었다. 광주를 자주 찾으면서 조선대와 맺은 인연이 ‘명심보감 전도사’가 되는 계기가 됐다.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그 일 덕분에 고향에서 강의도 하고 ‘명강사’라는 이름도 얻게 됐잖아요.” 그는 명심보감 정기(正己)편에 나오는 ‘도오악자 시오사(道吾惡者 是吾師·나의 단점을 말해주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수년 전 TV에서 전당대회 기사를 쓴 기자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전했다.

그가 가보처럼 품고 다니는 명심보감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뭘까. ‘안분신무욕(安分身無辱)이요 지기심자한(知幾心自閑)이라.’ 분수를 알고 지키면 일신에 욕됨이 없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면 마음이 절로 한가해진다는 뜻이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내려와 선친처럼 후학들을 가르치며 지역에 봉사하고 싶어요.” 그의 이름을 딴 학당에서 회초리를 들고 명심보감을 가르치는 ‘배추머리 개그맨’을 볼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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