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형사사건 변호사 ‘성공보수’ 무효…전관예우 뿌리 뽑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4일 1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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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형사사건 피의자가 석방이나 불구속 등을 조건으로 변호사와 성공보수약정을 체결할 수 없게 됐다. 대법원이 전관예우와 연고주의를 타파하고자 내놓은 판결에 수임료 체계의 전면 변화가 불가피해진 변호사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성공보수는 사실상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후배인 현직 판·검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용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뿌리 깊은 사법 불신을 근절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3일 허모 씨(38)가 조모 변호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이 판결 이후부터 맺어지는 모든 형사사건 성공보수약정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허 씨는 아버지가 절도 혐의로 구속된 직후 조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착수금으로 1000만 원, 석방 조건으로 성공보수약정을 맺고 1억 원을 건넸다. 이후 허 씨 아버지가 보석으로 석방되고 집행유예형이 확정되자 허 씨는 조 변호사를 상대로 1억 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다. 1억 원이 담당 판사에 대한 청탁 활동비였고, 액수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1심과 달리 2심은 허 씨의 주장을 인정해 조 변호사에게 1억 원 중 4000만 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를 전원일치로 확정하면서 앞으로 형사사건에 대한 성공보수금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전관예우와 연고주의를 뿌리 뽑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재판부는 석방이나 집행유예 등 피고에게 유리한 수사·재판 결과에 대해 ‘성공’이라는 이름을 붙여 금전적인 대가를 결부시키는 건 국가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판단해 ‘선량한 풍속 등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라는 민법 103조를 근거로 무효 판결을 내렸다. 민사사건에 대한 성공보수약정은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성공보수는 사실상 전관 출신 변호사가 비전관 변호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받아온 게 현실이다. 의뢰인은 전관 변호사가 현직 판·검사에게 청탁할 수 있는 기회나 능력을 더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전관 출신 변호사는 일반 형사사건의 석방 성공보수로 수억 원을 받아왔고, 유명 기업인의 경우 100억 원을 넘는 사례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변호사 보수가 변호사와 의뢰인간 합의로 결정되는 게 원칙이지만 형사사건은 국가형벌권을 실현하는 절차로서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과 윤리성이 절실히 요구된다”며 “형사절차나 법조 직역 전반에 대한 신뢰성·공정성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그 보수를 단순히 사적 자치의 원칙에 입각한 대가 수수관계로 맡겨둘 수만은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로 ‘착수금+성공보수’ 형태이던 변호사업계 수임료 체제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성공보수가 없어지면서 최초에 내는 착수금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 서민들만 더 어려워진다는 주장과 변호사 선임료 총액은 과거보다 낮아질 거란 주장이 맞서고 있다. 대형 로펌처럼 시간 단위로 진행 경비를 받는 형태의 수임료 계약이 일반화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대다수 변호사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변호사 수가 많아지면서 사건 수임도 줄었는데 형사사건 성공보수까지 없어지면 입지가 확연히 좁아진다는 주장이다.
조동주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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