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명인열전]“심근경색도 골든타임 중요… 통증땐 즉시 병원 찾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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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정명호 전남대 교수

정명호 전남대 순환기내과 교수는 협심증이나 급성 심근경색증과 같은 관상동맥 질환을 치료하는 전문가다. 연간 3500건의 관상동맥 중재술을 시행하는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진료 및 연구 업적을 보여주고 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정명호 전남대 순환기내과 교수는 협심증이나 급성 심근경색증과 같은 관상동맥 질환을 치료하는 전문가다. 연간 3500건의 관상동맥 중재술을 시행하는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진료 및 연구 업적을 보여주고 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15일 오전 광주 동구 제봉로 전남대병원 7동 6층 심장센터. 파란색 가운에 두꺼운 납옷을 걸친 정명호 교수(57·순환기내과)가 미팅 룸으로 들어섰다. 오전 5시 반에 출근해 7시부터 10건의 관상동맥 중재 시술을 한 그는 피곤할 법도 했지만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의 복장에서 특이한 게 눈에 띄었다. 그가 신고 있는 하얀색 운동화였다. “하루에 많게는 20명 정도 시술을 하는데 납옷 무게가 10kg 정도 돼 하중을 견디려면 운동화가 편해요. 급할 때는 이곳저곳 뛰어다니기도 좋고요.”

심장센터 옆 동에 있는 정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 세계에서 모은 돼지인형이 33m²(약 10평) 남짓한 연구실 장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 교수는 정확히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1000개가 넘을 것이라고 했다. 이 중 상당수는 정 교수가 수술해 병이 나은 환자들이 감사의 표시로 준 선물이다. ‘58년 개띠’인 그가 유독 돼지인형을 챙기는 이유는 뭘까.

“돼지는 인간과 장기가 가장 비슷한 동물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보면 돼지와 유인원이 합쳐져 인간이 생겼다는 가설이 있을 정도죠.” 돼지 심장 무게는 약 500g이다. 크기나 혈전 체계, 해부학적 구조가 인간의 심장과 비슷하다. 그래서 심혈관계 질환을 연구하는 데 돼지만 한 동물이 없다. 정 교수는 “고난도 심장수술 전에는 돼지를 통해 가상 수술을 한다. 돼지는 (나의) 연구와 수술을 완성시키는 기반이자 보물”이라고 말했다.

정명호 교수 연구실 장식장에 놓인 세계 각국의 돼지인형. 정 교수는 인간의 심장과 해부학적 구조가 비슷한 돼지로 연간 150회 정도 실험을 한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정명호 교수 연구실 장식장에 놓인 세계 각국의 돼지인형. 정 교수는 인간의 심장과 해부학적 구조가 비슷한 돼지로 연간 150회 정도 실험을 한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그는 지난해 3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돼지 심장 수술 2000건을 돌파했다. 1996년 전남대 의과학연구소에서 국내 최초로 돼지 심장 실험을 한 지 18년 만에 세운 기록이다. 정 교수는 지금까지 돼지 심장 실험을 통해 1226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국내 의생명과학 분야 교수와 연구원 1만5000여 명 가운데 최다 기록이다. 국내외 특허출원 및 등록 45건, 기술 이전 4건, 저서 62편 등 연구개발 실적도 탁월하다. 그는 연간 3500여 건의 관상동맥 중재 시술을 해 98.8%의 높은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이 시술은 막힌 심장혈관을 풍선도자나 스텐트(혈관을 넓히는 스프링)를 이용해 뚫거나 넓혀 주는 것이다. 이런 성과로 2010년 대한심장학회 학술상, 2012년에는 ‘대한민국 노벨의학상’이라고 불리는 대한의학회 분쉬의학상을 받았다.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2006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2012년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 자격을 얻었다. 미국 심장학회, 미국 심장병학회, 미국 심장중재술학회, 유럽 심장병학회 등 세계 4대 심장학회 정회원 및 지도전문의 자격증도 국내 최초로 취득했다.

정 교수가 2005년 한국인 급성 심근경색증 등록연구사업 총괄책임자로 지명된 이후 전남대병원은 전국 최고 심혈관 질환 전문 치료병원이 됐다. 그동안 전국 57개 대학병원 가운데 가장 많은 5만8000여 명의 환자가 내원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심장질환 특성화 연구센터로 지정되면서 매년 12억 원의 연구비를 받고 있다.

정 교수는 셀 수 없이 많은 환자를 치료했지만 그중에서 두 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들은 국내 최고령, 최연소 심근경색 환자다. 4년 전 101세 할머니가 응급실로 실려 왔다. 할머니는 혈관이 단단해진 데다 폐부종까지 겹쳐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환자의 아들은 그를 붙잡고 수술을 해달라며 통사정을 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수술이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2000년에는 열다섯 살짜리 중학생을 치료한 적이 있다. “올해 105세가 되신 할머니는 아들을 통해 가끔 안부를 전해 옵니다. 서른 살이 된 당시 중학생은 1년에 한두 번 병원을 찾는데 아주 건강합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은 ‘급성 심근경색증’이라고 한다. 국내 돌연사 원인 1위이자 사망률이 30%나 된다. 그중 10∼20%는 아예 손도 써보지 못하고 귀중한 목숨을 잃는다. 정 교수는 심근경색 예방과 발병 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3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첫째는 금연. 국내 장년층 심근경색증 환자의 3분의 2가 흡연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망설이지 말라는 것이다. 심한 가슴 통증과 식은땀, 메스꺼움 등 전조 증상이 나타나면 지체 없이 병원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119구급차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차 안에서 인공심폐소생술(CPR)을 받을 수 있고 구급대원들이 어느 병원으로 가야 신속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혈관 명의’로 불리는 정 교수는 그동안 서울 유수 대학과 대형 병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광주를 떠나지 않았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길을 마다한 이유가 궁금했다. “광주전남은 그동안 소외의 땅이었잖아요.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광주를 등질 수 없었어요. 지역에서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고요.” 그는 아직도 못 이룬 꿈이 있다고 했다. 2007년부터 추진해온 국립심혈관센터 유치다. “심혈관 질환 치료 및 연구 인프라가 우리 지역처럼 잘 갖춰진 곳이 없어요. 지역 정치인과 시도민이 함께 나서 국가 정책에 꼭 반영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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