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62시간’ 뚫고… 南-北線 하나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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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코리아 프로젝트 3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유라시아 친선특급 이르쿠츠크 도착

악명 높은 ‘TSR에서 머리감기’ 도전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 유라시아 친선특급열차 객실 내부(왼쪽 사진). 16일 러시아 하바롭스크를 출발해 19일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는 구간은 62시간 동안 이동한다. 이 열차는 별도의 샤워실이 없어 작은 세면대를 이용해 머리를 감아야 한다. 이르쿠츠크=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악명 높은 ‘TSR에서 머리감기’ 도전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 유라시아 친선특급열차 객실 내부(왼쪽 사진). 16일 러시아 하바롭스크를 출발해 19일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는 구간은 62시간 동안 이동한다. 이 열차는 별도의 샤워실이 없어 작은 세면대를 이용해 머리를 감아야 한다. 이르쿠츠크=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북선)와 중국 베이징(北京·남선)에서 각각 ‘유라시아 친선특급’에 몸을 실은 참가자 250여 명은 19일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만났다.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이 담긴 이 열차에는 특별한 인사도 있었다.

남선 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야노프스키 얀롤프 평양 주재 독일대사관 2등 서기관(30)이 그 주인공. 2012년부터 3년 임기로 평양 주재 독일대사관에 근무 중이며 올해 9월경 독일 외교부에서 남북한 실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그는 이날 “북한이 직접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참가하지 못하는 만큼 남북의 연결고리가 되고자 참가했다”며 “남과 북의 통합을 위해 양측이 자주 접촉해 신뢰를 쌓으며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친선특급에 대해 알고 있다”며 “한반도 정세가 복잡해 이번 행사의 취지를 약간 의심했지만 (나의) 참석을 반대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병무 평양과학기술대 치대 설립학장(66)은 북선을 타고 친선특급에 참석했다. 이 학장은 평양과기대 의학부 건립 현황 등을 소개하며 “남한의 대학생들과 평양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북한 학생들의 생활을 소개해 남북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친선특급의 이르쿠츠크 도착은 유럽과 아시아인 모두의 협력을 이끌어 낸다는 의미도 있다. 이날 이르쿠츠크에서는 러시아인과 고려인 등 500여 명이 참석한 ‘유라시아 대축제’가 열렸다. 한국-러시아 친선 축구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참가자들은 16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타고 62시간을 달리는 장거리 여행을 견뎌냈다. TSR의 좁은 통로(폭 1m가량)와 객실(약 1평), 세면의 불편함은 악명이 높다. 기자는 열차 생활 33시간이 흐른 18일 ‘TSR에서 머리 감기’에 도전했다. TSR에선 밸브를 돌려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세면대 수도꼭지 밑에 달린 스틱을 아래에서 위로 힘껏 올리거나, 수도꼭지 위의 버튼을 누르고 있을 때만 물이 나온다. 승무원 스베틀라나 씨(29·여)는 “장시간 이동 구간에서 저장된 물이 바닥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와도 세면대 바닥에 물 빠짐을 막는 마개가 없다. 물이 하수구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참가자들은 골프공, 강력 테이프 등을 동원했다. 기자는 로션통(원형)을 구멍에 꽂아 물을 받은 뒤 머리를 감았다. 헹구기 위해 세면대의 물을 찾았으나 로션통으로 구멍을 다 막지 못해 물은 이미 하수구로 빠져나갔다. 결국 화장실 근처를 지나던 한 참가자의 도움으로 물을 받아 머리 감기를 끝냈다. 일부 참가자는 바가지나 윗부분을 잘라낸 물통에 물을 담아 샤워를 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 참가자들은 “TSR의 좁은 공간은 동료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마술사, 요리사와 함께 생활하는 이승현 씨(39·화가)는 “화가 친구는 많지만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친선특급에서 직업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객실 생활을 하면서 친분을 많이 쌓았다”라고 말했다.

이르쿠츠크=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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