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너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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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너무 좋다’ ‘너무 싫다’ ‘너무 고맙다’ ‘너무 밉다’. 이들 문장에서 ‘너무’의 용법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언어감각이 상당히 예민한 사람이다.

‘너무’는 20여 일 전쯤만 해도 입말과 문법이 팽팽히 맞서던 낱말이다. 사전은 부정적인 서술어에만 ‘너무’를 쓸 수 있다고 했지만, 언중은 긍정적인 의미로도 폭넓게 써왔기 때문이다. 마침내 국립국어원도 언어 현실을 받아들여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에서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라고 뜻풀이를 바꾸었다. 부정과 긍정, 모두에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긍정적인 상황에서 ‘너무’를 대신할 수 있는 낱말들은 많다. ‘아주’ ‘정말’ ‘매우’ ‘무척’ ‘엄청’ ‘대단히’ 등이 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은 ‘너무’라는 부사에 가려 점점 사용이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언중이 왜 ‘너무’를 더 많이 사용하는지, 왜 부정을 강조하는 말을 긍정의 의미에도 쓰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시간이 말법을 바꾼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별로’라는 말도 지금은 부정어와 호응하지만, 옛날에는 ‘별나게’ ‘특별히’라는 의미였다. 지금은 ‘별로 맛이 없다’가 맞지만 예전에는 ‘별로 맛이 있다’가 옳은 용법이었다. 이 흔적은 아직 북한어에 남아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라는 말에도 식상했는지 또 다른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완전’이라는 말이다. ‘완전 재미있다’ ‘완전 맛없다’고 한다. 그러나 완전이라는 말을 이렇게 불완전하게 사용해도 되는지는 의문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 ‘젠젠(전연·全然)’이라는 말을 부정어로 쓰다가 젊은이들이 ‘매우’ ‘너무’라는 뜻으로 긍정어에도 쓰는 움직임과 비슷하다.

‘빌려주다’도 논리와 말법이 충돌하는 경우다. ‘빌리다’는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돌려주거나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은 ‘빌리다’와 ‘주다’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빌려주다’를 오랫동안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중이 ‘빌려주다’를 꾸준히 쓰는데 어쩌랴. 이 단어도 지금은 표준어다.

‘기막히다’는 낱말도 재미있다. 이 말은 ‘놀랍거나 언짢아서 어이없다’와 ‘매우 좋거나 정도가 높다’는 전혀 다른 상황에 모두 쓰인다. “하는 짓이 기막히다”와 “음식 맛이 기막히다”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용법을 혼동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표현도 그렇다. 기막히다와 닮았다. 칭찬일 경우 성인군자나 신처럼 인간을 초월한 존재를 뜻하지만 욕일 경우에는 정반대다. 말맛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말도 이와 같아서 뜻이 너무 분명하면 쓰는 재미는 덜할지도 모르겠다. ‘의미’와 ‘재미’의 묘미를 말 자체가 알 리는 없겠지만.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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