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도 당하는 ‘빅데이터 보이스피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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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거래-대출상담 등 정보 꿰고 검찰 홈피까지 조작해 안심 유도
속임수 진화… 피해액 2년새 倍로

“한남동 ○○부동산에서 전세계약 하셨나요? 그곳 부동산 사장이 김민희(가명·30·여) 씨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1900만 원을 대출받았습니다.”

김 씨가 자신을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이라고 소개한 남성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은 5월 말이었다. 그는 김 씨의 직장, 주소는 물론이고 3월 전세 재계약을 맺은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수사관은 “당신(김 씨)이 공범일 수도 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며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주거래 은행은 어디십니까?’ ‘보안카드 사용합니까?’ 고압적인 말투가 영락없는 수사관이었다. 김 씨에게 훈계도 했다. “개인정보를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했으면 이런 일을 당한 겁니까.” 인터넷주소도 불러줬다. 화면에 뜬 검찰 홈페이지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니 검찰총장 직인까지 찍힌 공문서가 펼쳐졌다.

통화 끝에 수사관은 공인중개사가 추가 범죄에 나설 수도 있으니 검찰이 관리하는 안전계좌에 김 씨 주거래 계좌의 잔액을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순간 보이스피싱 의심이 든 김 씨가 검찰청을 방문해 조사를 받은 뒤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상대방은 끝까지 노련했다. “일정 확인해 연락드리겠습니다.”

보이스피싱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중국동포 사투리는 더이상 쓰지 않는다. 2006년 한국 사회에 처음 나타난 보이스피싱은 진화를 거듭해 피해자의 부동산 거래·대출 상담 내용 등을 줄줄이 꿰는 정보력, 감쪽같은 가짜 홈페이지 등으로 무장했다. 유출된 개인정보를 입수해 상대를 정확히 파악한 뒤 신뢰도 있는 기관을 사칭해 접근하는 최근의 수법을 전문가들은 ‘4세대’ 보이스피싱으로 진단한다. 금융감독원 김용실 금융사기대응팀장은 “과거에 노인들이 주로 당했다면 수법이 진화하면서 20, 30대의 피해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4세대 보이스피싱 등장 후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14년 2165억 원으로 전년(1365억 원)에 비해 58.6%나 늘었다. 2012년(1154억 원)과 비교하면 2배 수준이다.

금감원은 4세대 보이스피싱에 대응하기 위해 4월 금융사기 척결 특별대책을 내놓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찰청과 수사 내용을 공유하는 핫라인도 구축하기로 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신민기 기자 
#보이스피싱#빅데이터#4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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