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다양한 삶, 그들과의 가슴 떨리는 만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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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아베크 매거진 에디터
이원희 아베크 매거진 에디터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직업으로 굳어졌다.

사람을 만나는 일. 끊임없는 호기심과 질문으로 사람을 탐구해야 하는 일. 그리고 독자에게 글을 통해 누군가를 소개하는 일.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온갖 다양한 자아가 뭉쳐 있던 학창시절, 나는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고, 사회에 던져진 20대 중반이 돼서야 내가 알고 있던 사회성과 사회가 원하는 사회성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배웠다. 모순이지만 사회성에 바탕을 둔 기술이 필요한 인터뷰어라는 직업이 생겼다. 시인 이성복이 말했듯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았고, 지금처럼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어딘가에 기고하면 돈을 번다. 돈만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려운 일과 하기 싫은 일은 엄연히 다르니까. 그런데 두렵다고 느끼는 이 일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삶의 기쁨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얻는다는 것에 있다.

만나야 할 인터뷰이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뛴다. 머릿속에는 온통 인터뷰이에 관련된 것들로 가득 찬다. 애인이 있어도 애인의 자리는 없어지는 격이다. 그렇게 사랑 아닌 사랑에 빠지면 인터뷰 준비는 한결 수월해진다. 물론 여기서 맹목적인 사랑은 금물이다. 주관적인 사랑만 존재하면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독자의 사랑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인지라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인터뷰어다. 인터뷰이를 향한 사랑에도 강약 조절이 필요하달까. 조심스럽게 수위 조절을 하고 나면 어디 하나 똑같지 않은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라면을 떠올려 보자. 각자의 조리법이 있다. 라면 봉지에 적혀 있는 조리법을 똑같이 따라 하지 않는 이상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취향대로 끓일 것이다. 그 방식을 놓고 누구든 맞다 혹은 틀리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다를 뿐이다.

2014년, 한 해의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만난 사람은 10년 가까이 자수를 놓은 자수가였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20대 초반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그녀는 자수라는 행위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불만이 많고 초조했던 성격은 한 땀 한 땀 바늘의 자리를 찾으며 차분해졌고, 무엇보다 모든 일에 마음을 툭 내려놓게 되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당시 나는 잘 풀리지 않는 일들, 마감이 코앞에 다가온 일들로 시끄럽고 분주했다. 일이 잘못되면 쉽게 상대방 탓으로 돌리곤 했다. 따뜻한 찻잔을 매만지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녀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자수를 놓는 기술이 아닌 그녀만이 갖고 있는 시각, 사고방식이었다. 아주 잠깐 자수를 배워볼까라는 생각도 스쳤지만 그녀와 나눈 대화만으로도 나의 인생관을 재정비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판단한다. 일반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일반적인 것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면 괴로워한다. 고정적인 이미지가 만들어낸 자신만의 일반론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인터뷰는 아직도 내게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다.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한 숙련자도 아닐뿐더러 빼어난 자질을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울렁거림을 사모하는 것은 매달 만나는 다양한 사람의 삶, 그 안에 자리 잡은 각양각색의 생활방식을 통해 나만의 일반론을 조금씩 깰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씩 깨고 나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기도 하다.

4월이다. 시간은 유속처럼 흘러가고 이달에는 어떤 인터뷰이를 만나게 될까. 어떤 삶과 마주하게 될까. 그리고 어떻게 전달하게 될까. 정해진 대상이 없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잘 다독거린다. 그리고 되새긴다. 누구를 만나든 사랑에 빠질 준비는 되어 있다고 말이다.

이원희 아베크 매거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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