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들 “우리가 실험도구인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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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오락가락’ 교육부에 분통
17일 ‘어려운 수능’ 방침 발표후… 교육계 안팎 “사교육 조장” 비판
“수능 쉽게”… 사흘만에 말바꾼 교육부

《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변별력을 확보하겠다며 17일 ‘어려운 수능’을 예고했던 교육부가 사흘 만에 “지난해 수준으로 쉽게 내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수능이 어려워질 경우 다시 사교육이 증가할 것이라는 지적에 한발 물러선 것. 학생과 학부모들은 “입시 정책이 장난도 아니고 불과 사흘 만에 뒤집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조령모개식 교육정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

교육부가 불과 사흘 만에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방침을 뒤집었다.

교육부는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수능 개선 시안 발표 뒤 교육현장에서 수능이 어려워진다는 혼란이 있어 교육부의 명확한 입장을 정리한다”며 “올해 수능도 작년과 같은 출제 기조(쉬운 수능)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예년과 같은 수준으로 출제한다고 밝혔다. 특히 수학은 16일 발표한 ‘제2차 수학교육 종합 계획’ 취지가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배우는 수학’인 만큼 어렵지 않게 출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불과 사흘 전 발표와는 정반대.

17일 교육부는 수능 개선 방안을 발표하며 “수능이 적정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영역별 만점자가 너무 많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해 수능이 ‘사상 최악의 물수능’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쉽게 출제돼 만점자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과생들이 치른 수학B는 수능 사상 만점자 비율이 가장 높아 4.3%에 달했다. 교육부의 발표는 당연히 ‘어려운 수능’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고 “학생들이 학원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교육부는 “정책 기조를 바꾼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지난해 만점자가 속출한 것은 문제가 쉬워서가 아니라 응시생 중 상위권 학생 수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이 의대로 전환되면서 의대 정원이 늘었고, 여기에 상위권 응시자들이 몰려 만점자가 늘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쉬운 출제 논란은 극소수 문항 때문이지 전체 난이도는 문제가 없었다”며 “변별력을 높이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부분을 개선하겠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의전원의 의대 전환으로 늘어난 정원은 1047명. 반면 여기에 응시한 자연계 수학B 과목의 만점자는 6630명으로 전해(936명)보다 약 7배로 늘었다. 상위권 학생이 늘어 만점자가 많아진 것이 아니라 시험이 쉬웠기 때문이라는 증거다.

이날 교육부가 예정에 없던 발표를 한 것은 당초 예상보다 사교육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17일 첫 발표 뒤 학부모와 학생들이 동요하고 사교육 업체들이 때맞춰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자 교육부도 분위기가 급박하게 돌아갔다”고 말했다. 사전에 내부에서도 사교육 팽창을 우려하는 의견이 나왔지만 “일단 대책 발표가 급하다”는 의견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게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사교육비가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교육부가 ‘기름 부은 격’이 됐다”고 전했다.

일선 교육현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이사는 “교육부의 해명대로면 지난해 수능은 문제가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개선 TF를 만들고 대책을 냈느냐”고 반문했다. 수험생들은 “우리가 마루타냐” “사흘 만에 수능 계획이 바뀌었으니 앞으로 수능 전까지 70번은 더 바뀌겠다”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한 수험생은 “교육부가 수능을 쉽게 내면서 변별력도 갖추겠다고 했으니 올 수능은 물수능, 불수능도 아닌 ‘수중(水中)기뢰’가 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겉으로는 쉬운 수능(물수능)이겠지만 고난도 문제들이 폭탄처럼 숨어 있을 것이라는 촌철살인의 비유이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수험생#수능#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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