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프리카인의 한국 공항 노숙 소송투쟁…사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8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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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난민 신청 받아주세요!”

2013년 11월 아프리카인 모하메드 씨는 세 번의 여객기 환승으로 꼬박 이틀 걸려 낯선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그의 고국은 2011년 분리독립 이후에도 지속적인 교전과 내전으로 총성이 끊이질 않는 수단. 북수단 정부의 강제징집에 응하지 않고 입영을 피해 교외로 도망쳤다가 천신만고 끝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땅은 냉정했다. “전쟁이 같은 형제자매를 죽이는 데 이용되고 제가 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들도 죽일 수 있다”는 ‘출국의 변(辯)’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할만한 명백한 사유가 없고 모하메드 씨가 난민인정 신청사유 등에 관해 거짓된 진술로 일관하고 있다”며 입국을 불허했다. 영어에 서툰 탓에 진술을 오락가락한 것이 주된 문제였다.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한 모하메드 씨의 고독한 여정이 시작됐다. 그는 출국대기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공익 변호사를 선임해 송환 대기실에서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인신보호 청구소송, 변호사를 접견할 수 있게 해달라는 헌법소송, 정식으로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행정소송 등 3건을 제기했다. 지난해 4월 인천지법은 대기실 수용이 법적 근거가 없다며 모하메드 씨의 손을 들어줬고, 그제야 그는 5개월 만에 출국 대기실 신세에서 벗어나 면세점 매장이 자리한 환승구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며칠 뒤에는 송환 대기실 내 난민 신청자의 변호인 접견권을 허가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 가처분도 나왔다.

행정소송 1심 재판부는 “수단이 내전 상황에 있고 모하메드 씨가 수단 정부의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하지 않은 결정은 해당 처분청이 재량을 일탈하거나 남용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6부(부장판사 윤성근)도 “난민 신청 사유가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요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난민’ 지위를 확인할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모하메드 씨 진술의 진위를 명백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심사에 회부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공항 당국이 상고를 포기해 1월 말 확정된 이 판결로 모하메드 씨는 정식 난민 심사를 신청하게 됐다. 한국에 도착한 지 1년 3개월 만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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