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설화의 메카’로 뜨는 전남 고흥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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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 읍면 거주 노인 2114명 인터뷰
2만여쪽 분량 설화문학집 펴내… 웹툰제작 등 문화콘텐츠사업도 활기

2017년 초 개관 예정인 한국설화문학관 조감도. 고흥군 제공
2017년 초 개관 예정인 한국설화문학관 조감도. 고흥군 제공
#1. “태풍이 온다고 바람이 불면 파도가 초가집 지붕만치 붑니다. 저짝(저쪽)에서 요짝(이쪽)을 본다면 잔잔하게 보이거든요. 나라도(나로도) 쪽에서 보면 배들이 태풍이 온지도 모르고 통신이 안 되니까 요리 지나가다가 이 앞바다에서 침몰된 배가 한두 척이 아닙니다. 배가 뒤집어지면 사람은 하나씩 비어 버리죠. 저기 비렁이라고 돌만 있는 바닷가가 그곳이에요.”(김영길·72·고흥군 영남면 남열리)

#2. “우리 동네는 다 선소(船所)여. 그 강(발포항)이 그 전에는 겁나게 짚었어(깊었어). 나 알기로도 큰 작대기 너닷 발 되는 대막대기를 가지고 쇠스랑을 해서 굴을 건져서 해먹고 그랬어. 부잣집들은 들에서 술을 받아 가지고 여그(여기) 쌓아 놨다가 싣고 그랬는디…. 500석이나 싣는 곱배가 들어와서 싣고 그렸어.”(고광정·91·고흥군 도화면 덕흥마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설화(說話)에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주민의 삶과 정서가 오롯이 담겨 있다. 전남 고흥군이 ‘설화의 메카’로 뜨고 있다. 2년여에 걸쳐 16개 읍면의 각종 설화를 발굴해 2만여 쪽의 설화집을 펴내고 한국설화문학관 건립에 나서는 등 기록문화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설화의 고장’으로 우뚝


고흥군은 지난해 말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역 전체의 각종 ‘설화’를 한데 모은 설화문학 연구조사서 ‘고흥의 미래, 여기에 길이 있다’를 펴냈다. 2만1004쪽 분량의 설화문학집은 고흥군과 전남도립대 조사팀이 고흥군 16개 읍면에 사는 노인 2114명을 인터뷰한 향토사적 보고서다.

설화는 읍면별로 모두 13권의 책에 나눠 수록됐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 신화와 전설, 민담과 마을 유래 등 구비문학적 내용이 담겨 있다. 일제의 만행과 징용, 제주도4·3사건과 여수·순천 10·19사건, 6·25전쟁과 보도연맹, 긴급조치와 비상계엄령 등 그동안 삶의 역정도 녹아 있다. ‘이 당신’(친한 사람), ‘저 당신’(덜 친하거나 미운 사람) 등 질박하고 다정한 고흥 지방언어가 풍성하다. 당산제 샘굿 당골래 상엿소리 자치기 낫치기 땅따먹기 등 전통 민속놀이와 생로병사, 혼인 등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조사팀을 이끈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유아교육과)는 “연구조사서는 시나리오 작가와 소설가들이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작품 소재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고흥군은 50부를 발간해 도서관, 대학 등에 배부하고 일부는 2017년 초 개관 예정인 ‘한국설화문학관’에 비치할 예정이다.

○ 설화문학 전승 기반 구축

고흥군이 설화문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조선시대 ‘인물 만화경’이라 불리는 설화집 ‘어우야담(於于野譚)’의 작가 유몽인(1559∼1623)과의 인연 때문이다. 고흥 유씨인 유몽인은 한양에서 태어났으나 1612년 고흥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감로정’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광해군이 유몽인을 ‘위성공신’에 책봉할 당시 교서(보물 제1304호)는 현재 고흥군 두원면에 사는 후손이 보관하고 있다.

고흥군은 전국 자치단체 설화를 한데 모은 문화콘텐츠를 구축하기 위해 420억 원을 들여 두원면 운대리 분청사기 가마터에 한국설화문학관을 짓고 있다. 군은 차츰 소멸돼 가는 설화문학의 전승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2012년 ‘유몽인 설화문학 학술대회’를 열고 2013년에는 지방의 라디오방송을 통해 ‘유몽인 어우야담’ 20부작을 발표했다. 올해는 이를 웹툰으로 제작해 전국에 보급하고 내년에는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어유야담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사업 외에도 임진왜란에 참여한 고흥 출신 의병 군관 승병 등의 인물 재조명 사업, 박찬영 정운회 송석규 등 고흥 출신 대표 문인들의 출판사업도 벌이고 있다. 박병종 고흥군수는 “현재 추진하는 사업을 마무리한 뒤 설화를 통한 산업화의 길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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