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없는 ‘갑질’에 성난 ‘을’의 반격…성공할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1일 2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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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키워드는 ‘갑과 을’이었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입주민에게 모멸감을 당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 그리고 ‘땅콩 회항’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갑을문제가 터져 나왔다.

한국에서 ‘갑을관계’는 배려 없는 일방통행을 의미한다. 아무리 고쳐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갑이라 하더라도 을에게 배려를 베풀면 회사에선 더 많은 성과를, 업소에선 더 좋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선 ‘갑질’ 논란만 연이어 터지고 있다. 하지만 갑이 을에게 최소한의 배려심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젠 강한 역풍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절대 넘을 수 없었던 갑의 권위에 법과 정의를 앞세운 ‘청년 을’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 패션계의 슈퍼갑에게 경고 보낸 청년

“귀하께서 오랜 세월동안 견습 월급 10만 원, 인턴 월급 30만 원, 정직원 100만 원과 같은 창의적인 방식으로 패션계에 갓 진입한 청년들의 열정과 노동을 마음껏 착취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는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청년유니온, 패션노조가 모여 ‘청년착취대상’ 시상식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27일~31일 국내 톱 디자이너들을 후보로 ‘누가 가장 착취 했는지’ 패션계 종사자들에게 페이스북 투표를 진행한 결과, 유명 디자이너 이상봉 씨가 대상으로 뽑혔다.

패션업계에는 따로 노동조합이라 부를 만한 조직은 없지만 최근 패션노조가 생기면서 SNS를 중심으로 세를 불리는 중이다. 패션노조 측은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라는 곳에 소속된 톱 디자이너 몇 명이 이 바닥을 좌지우지한다. 학교 졸업작품 심사부터 정부지원금이 걸린 각종 경연까지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보니, 부당함에 항의하지 못하고 눈물만 삼키는 청년들이 많았다”라고 노조 설립취지를 밝혔다.

여성 디자이너는 특히 몸 차별에 가슴앓이를 한다. 이경은 씨(가명·25)는 “면접을 보러 가면 포트폴리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가져다주는 옷을 입어보라고 하는데 그게 면접이다. 내 키가 167㎝에 55사이즈를 입는데 어떤 업체는 ‘말랐다’ 어떤 곳은 ‘몸매가 우리 이미지와 안 맞는다’ 등 내 몸을 품평하고 당락을 결정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는 시간당 1만 원 이상을 지급해야 하는 피팅 모델 역할까지 1인 2역을 할 디자이너를 채용해 인건비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꼼수다. 강윤정 씨(가명·29)는 “어깨가 좁다는 이유로, 허벅지가 뚱뚱하다는 이유로 인격비하 발언을 듣는다. 회사에서 강제로 다이어트를 요구받아도 말 한 마디 못하는 것이 이 곳”이라고 말했다.

디자인계의 갑질에 청년들이 맞서자 정부도 이들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1일 의류 패션디자인 업체를 대상으로 광역단위의 ‘근로감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주 중 감독대상 업종과 사업장을 구체적으로 선별하고 근로기준법 위반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 맥도널드 향해 목청 높인 알바

패션노조 탄생에는 지난해 8월 출범한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알바노조)의 도움이 있었다. 알바노조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피해에 각종 상담을 도맡고 있다. 현재 가입 인원은 350명 정도다.

이들은 지난해 9월 ‘꺾기 관행(손님이 없을 때 강제 조퇴시키고 그 시간만큼 임금을 안 주는 것)’을 노조에 제보했다는 이유로 대학생 이가현 씨(22)를 해고한 맥도널드 측에 대항하고 있다. 맥도널드 측은 “기간만료로 인한 것이며 부당해고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이 씨와 노조는 “계약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백지 근로계약서를 쓰게 하기 때문에 근무기간 만료라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씨는 지난해 12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출했다. 패소하더라도 소송을 낸다는 각오다. 알바노조는 각종 사례와 구제방법을 담은 자료집을 2월부터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배포할 계획이다.

‘을’의 반란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갑이 늘어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법일 것이다. 복지부동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갑 앞에서, 더 이상 참지 않는 을들의 성난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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