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툭하면 “법적근거 미비”… 골병드는 시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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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락 기자·사회부
정재락 기자·사회부
울산 중구 태화강 대공원 자전거 대여소는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이다. 평일에는 600여 명, 주말과 휴일에는 1200명이 이용한다. 비치된 자전거 121대는 반납과 대여를 반복한다. 넓은 대공원(53만1319m²)을 다니기에는 자전거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빌린 뒤 급경사인 내리막길을 거쳐 대공원으로 내려와야 한다. 대여소가 대공원보다 4m가량 높은 도로변 주차장에 설치돼 있는 탓이다.

중구는 대여소 개장(2014년 4월) 이전부터 대공원 관리를 맡고 있는 울산시에 “공원 모퉁이에 대여소를 설치하자”고 요청했다. 울산시는 “하천법 적용을 받는 태화강 대공원에는 자전거 대여소 등 시설물을 설치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결국 중구가 관리하는 노상 주차장에 설치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급경사 내리막길을 위험스럽게 지나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중구는 최근 대여소 이동 설치를 다시 요구했다. 울산시가 장소를 추천했지만 시민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어서 이번에는 중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무원들이 ‘법의 잣대’만 들이댄 결과 시민 불편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또 있다. 울산 북구의 한 마을. 10가구 안팎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의 사각 퍼걸러(햇볕이나 비를 가릴 수 있는 휴게시설)는 노인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일종의 마을회관인 셈이다. 추운 날씨에도 노인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이곳에 모여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퍼걸러 사방을 가려놓은 천막은 곳곳이 찢어져 찬 바람이 그대로 들이쳤다. 노인들은 “알루미늄 새시로 가려주면 외풍을 막아 겨울 지내기가 한결 좋을 것”이라며 북구에 건의했다. 현장을 둘러본 북구 관계자도 설치를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겨울이 되도록 감감무소식. 북구 관계자는 “새시를 설치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수억 원을 들여 마을회관을 지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추위를 피하게만 해달라는 것인데…”라고 서운해하고 있다.

울산시의 내년 예산(2조9171억 원) 가운데 복지 관련 예산은 6539억 원. 이 가운데 노인복지 관련 예산은 올해에 비해 331억 원(26%) 늘어난 1604억 원이다. 두 사례를 보면서 공무원들이 내세우는 ‘법적 근거’가 과연 시민 편의를 무시하면서까지 앞세워야 할 소중한 가치인지 의구심이 들어 씁쓸하다.

정재락 기자·사회부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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