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창규]26억으로 우리 문화재 들여왔더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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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규·소비자경제부
박창규·소비자경제부
엊그제 프랑스 오세나 경매소에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쌍각 모자’가 닭고기 가공업체 ㈜하림의 김홍국 회장에게 돌아갔다. 낙찰 가격은 약 25억8000만 원(188만4000유로). 경쟁을 벌이다 보니 당초 예상 가격보다 4배나 뛰었다. 모자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이다.

하림그룹은 “평소 유물을 수집하는 취미는 없지만 도전정신이 투철한 나폴레옹에 대한 호감이 컸던 이유로 사재(私財)를 턴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회사 돈이 아니라 개인 돈으로 샀으니 문제가 될 게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국내외 대기업 창업자나 최고경영자(CEO)들이 관심사나 독특한 취미 활동에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개인적인 호사취미를 뭐라 탓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번 낙찰 소식에는 씁쓸한 구석이 없지 않다. 해외로 반출된 한국의 문화유산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사재를 쓰며 힘 쏟는 다른 기업인들과 대비돼서다.

국립중앙박물관을 후원하는 민간단체인 국립중앙박물관회에는 ‘YFM(Young Friends of the Museum)’이라는 산하 모임이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국내 경영인들이 회원으로 활동한다. 고려시대 유물인 ‘나전경함(螺鈿經函)’을 올해 7월 일본에서 들여올 때도 이들의 후원금과 지원 활동이 큰 도움이 됐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은 개인적으로 해외를 돌며 각종 우리 유물들을 들여와 일부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김홍국 회장은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세운 농장을 ㈜하림, 팜스코, NS쇼핑 등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지난해 매출액 4조8000억 원)으로 키웠다. 하지만 이게 모두 혼자 힘으로만 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부로부터 양계산업 지원 명목으로 10년간 융자금을 받는 등 상당한 지원을 받아왔다. 또 황금알 사업이라는 인허가 업종인 홈쇼핑도 운영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 해 유물 구입 예산은 약 28억 원. 김 회장이 낙찰받은 나폴레옹 모자 가격과 비슷하다. 만약 김 회장이 나폴레옹 모자 대신 해외의 우리 문화유산을 들여오는 데 사재를 털었다면 어땠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사회적 책임)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동안 받은 정부의 지원을 다른 형태로 갚는 모양새가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다.

박창규·소비자경제부 kyu@donga.com
#문화재#하림#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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