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꿈을 만나다]‘뽀드득’ 눈 밟는 소리, 부엌서 만들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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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이 만난 사운드 디자이너 서영준 씨

사운드 디자이너 서영준 씨(오른쪽)가 경기 다솜초 6학년 박관영 군(가운데)과 경기 양오초 3학년 윤예진양에게 음향기기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운드 디자이너 서영준 씨(오른쪽)가 경기 다솜초 6학년 박관영 군(가운데)과 경기 양오초 3학년 윤예진양에게 음향기기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최초로 국내 영화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겨울왕국’. 여기서 여동생 안나는 언니 엘사의 방문을 두드리며 “함께 눈사람 만들래?”라며 노래를 부른다.

이때 언니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경쾌하다. 하지만 안나가 성장하고 언니가 방안에서 두문불출하는 상태로 세월이 흐르면서 동생이 언니의 방문을 노크하는 ‘똑똑똑’ 소리는 점차 약해진다. 약해져가는 노크 소리를 통해서 영화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언니로 인해 동생의 마음속 상처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알려준다.

이렇듯 영화에선 꼭 대사나 배경음악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소리를 통해 등장인물의 희로애락을 기가 막히게 전달한다. 영화 속 모든 소리를 만들어내는 예술가가 바로 ‘사운드 디자이너’다. 경기 다솜초 6학년 박관영 군과 경기 양오초 3학년 윤예진 양이 최근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남양주종합촬영소를 최근 찾아 사운드 디자이너 서영준 씨를 만났다.

장갑 흔드니 새가 날아가네!

영화에 나오는 소리의 종류는 △인물의 말 △음향효과 △배경음악 등 3가지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이 중 주인공이 물을 마실 때 ‘꿀꺽’ 하는 소리, 비행기가 날 때 ‘윙∼’ 하는 소리와 같은 음향효과를 만든다.

박 군이 “음향효과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묻자 서 씨는 “공부할 때 쓰는 메모지, 액자를 걸어두는 벽처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겨울왕국’의 엘사가 눈을 밟을 때 ‘뽀드득’ 하는 소리도 만들 수 있나요”라고 윤 양이 물었다. 서 씨는 동료 사운드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뽀드득’ 소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직접 보여줬다. 전분을 가득 넣은 천 주머니를 양손으로 쥐었다 폈다 반복하니 신기하게도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났다. 또 장갑 한 짝을 마구 흔드니 새가 날 때 퍼덕이는 소리가 탄생했고, 철판 두 개를 서로 비비니 장군이 칼자루에서 칼을 꺼낼 때 ‘징∼’ 하는 박력 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박 군과 윤 양은 “생각지 못한 물건으로 소리를 만들다니 신기하다”며 입을 쩍 벌렸다.

개미다리에선 어떤 소리가?


지난해 30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는 박 군은 “친구들이 싸우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편집할 때 들어보니 싸울 때 나는 ‘퍽퍽’ 하는 소리가 너무 작아 당황했다”고 말했다. 서 씨는 “촬영현장에선 수백 가지 소리가 한꺼번에 녹음된다”면서 “촬영이 끝난 후 배우가 움직일 때 나는 소리만 따로 만들어 녹음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양이 “그동안 음향효과를 만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서 씨는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창조할 때”라며 웃었다.

“예를 들어 날갯짓하는 나비의 날개에서 나는 소리, 기어가는 개미의 다리에서 나는 소리를 만들어낼 때죠. 직접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만들어낼 땐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해요. 주로 좋은 영화와 책을 보면서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지요.”(서 씨)

모든 소리에 귀 기울여요

서 씨는 9세 때부터 좋은 외국 노래를 골라 들을 만큼 음악을 좋아했다. 어릴 적 작곡가가 되고 싶어 좋은 소리에 대해 공부했다. 그러다 영화에 나오는 다양한 소리에 푹 빠져 사운드 디자이너가 되었다.

사운드 디자이너가 되는 데 유리한 전공은 따로 없다. “다만 소리의 원리와 기능을 배우는 학문인 음향학과 각종 음향기기를 사용하는 법을 공부해야 사운드 디자이너가 실제로 하는 일을 배울 수 있다”고 서 씨는 말했다.

사운드 디자이너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서 씨는 “나뭇잎이 바람에 날아가는 소리, 음료수 잔에 든 얼음이 녹는 소리 등 다른 사람은 무심코 지나치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면서 “우리가 사는 지구에 얼마나 많은 소리가 있는지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글·사진 공혜림 기자 hlgong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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