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월호 ‘청계천 화교사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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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목조 쪽방촌… 올 2월 큰 화재, 생활고에 주민 20여명 아직 못떠나
재난위험 건물 서울서만 198곳 달해

올해 2월 17일 화마가 덮쳐 2명이 사망한 서울 중구 수표동 화교 사옥. 화재의 위험이 남아 있음에도 서민들은 이사할 형편이 되지 않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임현석 기자 ihs@donga.com
올해 2월 17일 화마가 덮쳐 2명이 사망한 서울 중구 수표동 화교 사옥. 화재의 위험이 남아 있음에도 서민들은 이사할 형편이 되지 않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임현석 기자 ihs@donga.com
21일 오후 서울 중구 수표동. 깔끔하게 정비된 청계천 옆으로 낡은 목조건물이 눈에 띄었다. 1951년 지어진 이른바 ‘화교(華僑) 사옥’이다. 과거 국내 거주 화교들이 지은 건물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실상은 월세 10만 원을 내면 살 수 있는 쪽방촌이다. 1층에 20여 개의 점포가, 2층에는 40여 개의 단칸방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방 한 칸의 크기는 6∼10m²이고, 화장실과 조리실은 공용이다.

올해 2월 17일 이곳에선 큰불이 났다. 누전으로 추정되는 불로 2명이 숨졌다. 건물 절반이 탔고 나머지도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28일이면 불이 난 지 100일이 되지만 여전히 복구가 되지 않은 채 화마(火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화교 사옥 안에는 아직도 불에 탄 나무나 플라스틱 등 집기가 곳곳에 방치돼 있었다. 매캐한 악취도 여전히 배어 있었다.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환경이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20명가량이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1984년 이곳에 터를 잡은 정광수 씨(46)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막노동 등을 하며 부모와 자녀 등 7명의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정 씨 가족은 쪽방 5개에서 나눠 살고 있다. 불이 난 뒤 이사도 생각했지만 지금의 돈벌이로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정 씨는 “냄새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아 청소도 하고 시설도 고치고 싶은데 구청에서 새로운 입주자가 생길까 봐 못하게 한다”며 한숨을 지었다. 개·보수가 어려운 것은 화교 사옥이 무허가 건물이기 때문이다.

화교 사옥 같은 노후 건물에 한 번 사고가 나면 안전에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민들은 경제적 형편 때문에 위험을 안은 채 그대로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화교 사옥에 불이 나기 6일 전인 2월 11일 중구 약수동 약수시장 내 3층짜리 건물 외벽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1층 생선가게 주인 양모 씨(65)가 머리를 다쳤다. 양 씨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그는 “위험해도 이곳의 임차료나 월세가 다른 건물의 절반밖에 안 되는데 어디로 가서 장사를 하겠냐”고 되물었다.

화교 사옥과 약수시장 상가 건물은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다. 사람이 살려면 긴급 보수가 필요한 상태다. 중구 측은 사고가 난 뒤 두 건물을 위험시설로 분류하고 사용 중지 명령과 거주민 퇴거 명령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중구 관계자는 “퇴거 명령 불응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하려 해도 워낙 어려운 사람들이라 쉽게 집행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긴급한 보수 보강이 필요한 D등급 이하 건물은 서울에만 198곳(2013년 말 기준)이 있다. 대형 참사의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입주자 대부분은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살고 있다. 화교 사옥 주민 김영복 씨(74)는 “화재도 무섭지만 빚도 무섭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임현석 ihs@donga.com·이건혁 기자
#수표동#쪽방촌#화교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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