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불성때 음주측정 거부 처벌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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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단력-의사능력 없고 경찰 체포 절차도 위법”

운전자가 만취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음주측정을 거부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형사5단독 김병찬 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측정 거부) 혐의로 기소된 노모 씨(54)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노 씨는 지난해 9월 제주시 애월읍의 한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하다 잠이 들었고, 차는 인근 도로 담벼락을 들이받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시동을 켠 채 차 안에서 그대로 잠이 든 노 씨가 술에 취해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파출소로 데려갔다. 당시 경찰은 술에 취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노 씨를 양쪽에서 부축해 걸었고, 현행범으로 체포하거나 임의 동행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은 파출소에서 노 씨에게 음주측정을 하려 했지만, 노 씨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하고 음주측정 빨대에 침을 뱉는 등 4차례 측정을 거부해 음주측정 불응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노 씨가 사고 뒤에도 차에서 시동을 켠 채 잠을 잤고, 파출소로 데려갈 때나 집으로 갈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해 경찰관들의 도움으로 이동한 점을 미뤄볼 때 판단력이나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였다”며 “음주측정 거부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수사 절차도 문제로 지적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노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거나 임의동행하지 않고 파출소로 데려간 것은 위법한 체포 상태에서 음주운전이라는 범죄의 증거를 수집하려 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도로교통법에선 음주운전자가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면허가 취소되는 한편 징역 1∼3년 또는 벌금 500만∼1000만 원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음주측정을 받지 않은 노 씨는 면허 취소나 형사 처벌을 모두 면하게 됐다.

이 판결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선 ‘(경찰이) 적법한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을 그냥 넘어갈 순 없다’며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의견과 ‘술 마시고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굴면 무죄가 될 수 있는 거냐’며 반박하는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엔 청주지법 형사항소1부(부장판사 김도형)가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고 28분 뒤 실시한 음주측정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059%(6개월 이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 벌금)가 나온 A 씨(54)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의 음주 시작 시각과 음주 속도, 안주 섭취 여부, 체질 등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처벌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추단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인사불성#음주측정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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