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新 명인열전]유기농 20년… 땅은 땀을 외면않더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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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채소에 꽂혀 친환경 농법 외길… 학사농장 강용 대표

광주 수완지구 학사농장 직영 2호 매장에서 강용 대표가 경운기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이 경운기는 1993년 강 대표가 전남 장성군 남면에서 친환경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던 것이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광주 수완지구 학사농장 직영 2호 매장에서 강용 대표가 경운기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이 경운기는 1993년 강 대표가 전남 장성군 남면에서 친환경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던 것이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992년 3월 도심 속 시골마을인 광주 북구 장등동에 삽 하나를 들쳐 멘 20대 청년이 나타났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은 66m²(2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 1동을 30만 원을 주고 마을 주민에게 빌렸다. 그는 개 2마리와 숙식을 하며 당시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무순(새싹채소)을 재배했다. 돈이 없으니 농자재는 아파트 공사장 등에서 폐자재를 가져와 조달했다. 친구한테 난방용 보일러를 빌리고 땔감을 주워 사용했다. 초라한 출발이었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농업으로 성공신화를 써보겠다는 야무진 꿈이 있었다. 그 꿈은 푸른 무순처럼 쑥쑥 자랐다. 그러나 무일푼으로 시작한 농사일은 쉽지 않았다. 농사 밑천인 비닐하우스가 비바람에 찢기고 폭설로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는 농업계에서 성공한 최고경영자(CEO) 반열에 오른 학사농장 강용 대표(48) 얘기다. 그는 “22년 전 숙명처럼 다가온 새싹채소가 내 인생을 결정지을 줄 몰랐다”며 웃었다.

강 대표는 전남대 농과대학 졸업을 앞두고 농업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서울 근교에서 무순을 재배하는 선배의 농장을 찾았다. 200m²(약 6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는 무순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한 선배가 “한 달에 무순 출하로 600만 원을 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농업의 희망을 봤다. 두 달 동안 농장에서 일을 배운 뒤 광주로 내려와 무순을 직접 키웠다. 학사농장의 시작이다. 학사농장은 현재 전국적으로 132만 m²(40만 평) 규모의 생산지에서 50여 가지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고 20여 가지는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경영 규모가 무려 2000배나 커졌다. 전남 장성을 비롯해 강원도 고랭지, 제주도, 전북 장수 등지에서 50여 농가와 계약을 하고 연중 신선한 친환경농산물을 전국으로 나르고 있다. 유기농 농산물을 판매하는 직영매장이 2곳, 가맹점 6곳, 취급점이 50곳이나 되고 회원수도 1만8000여 명에 이른다. 학사농장이 연 매출액 80억 원이 넘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실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강 대표의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굳은 소신과 끊임없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전략이 있었다.

그가 학사농장 본사가 있는 전남 장성군 남면에 터를 잡은 것은 1993년. 광주 근교에서 정성들여 씨를 뿌리고 채소를 키웠지만 수확을 앞두고 비닐하우스가 비바람에 쓰러지고 폭설에 무너지자 터전을 옮겼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할까 했는데 대학 후배들이 찾아와 힘을 보태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죠.”

강 대표는 어렵게 마련한 자금으로 장성군 남면에 6600m²(약 2000평)의 땅을 임차해 비닐하우스를 다시 지었다. 그곳에서 상추 고추 오이뿐만 아니라 치커리 청경채 레드치커리 비트 케일 신선초 등 쌈용이나 샐러드로 인기가 좋은 엽채류를 생산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광주의 한 백화점에 3.3m² 크기의 작은 판매대를 마련해 납품을 시작한 것. 그러나 한 달도 채 안 돼 스스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농산물을 계속해서 공급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당시에는 날마다 출하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탓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생각을 바꿨다. 판매대상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농산물 생산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강 대표는 유통망을 점검하고 매장을 관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지금도 직접 농사를 짓는다. 샐러리 양상추 쌈채소 등을 재배하는 3300m²(약 1000평)의 비닐하우스가 그의 일터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 농사일인데 돈 좀 벌었다고, 성공했다고 땅을 저버리면 농사꾼이 아니잖아요.” 그는 매장 직원들도 ‘농심(農心)’을 깨닫도록 모종과 수확 때는 매장 문을 닫고 전 직원이 농장에서 일을 하게 한다.

강 대표가 지금껏 버리지 않는 원칙이 있다. 단위 생산량이 떨어지더라도 절대 농약이나 화학비료는 쓰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찾는 이유가 맛이나 품질보다는 안전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친환경 농가단위에서는 처음으로 1억5000만 원이나 들여 농약정밀분석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의 고집과 원칙은 식당사업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7년 전 광주 상무지구 1호 직영매장 2층에 친환경농산물 전문식당을 연 데 이어 지난달에는 광주 수완지구에 무화학 친환경 유기농 패밀리 뷔페 ‘마플’을 개업했다. ‘마플’은 ‘마이너스 플러스’의 준말로 ‘나쁜 것은 빼고(마이너스) 좋은 것은 더했다(플러스)’는 의미. “농사는 일희일비해서는 안 됩니다. 유기농은 더욱 그래요. 꿈이 있다면 마플 같은 유기농 식당을 3000개 정도 만들고 싶어요. 이제 2998개 남았네요, 허허.”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에 농사에 대한 고집스러움이 묻어났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친환경#새싹채소#강용#학사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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