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희 기자의 숨은서울찾기]종로구 창의문로 ‘윤동주 문학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봄이 오는 길목, 詩가 있는 산책

종로구는 2012년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윤동주 문학관을 만들었다. 사진은 ①윤동주문학관 ②감옥에서 모티브를 얻어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만든 전시실 ③시인의 언덕. 종로구 제공
종로구는 2012년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윤동주 문학관을 만들었다. 사진은 ①윤동주문학관 ②감옥에서 모티브를 얻어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만든 전시실 ③시인의 언덕. 종로구 제공
장선희 기자
장선희 기자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윤동주 시인(1917∼1945)의 ‘봄’ 중 일부

3월, 봄이 오니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해진다. 시 한 편 읽으며 모처럼 감상에 젖어보거나 거리를 산책하며 겨우내 꽁꽁 언 마음을 녹이고도 싶어진다. 인왕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종로구 창의문로 119.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켜 줄 만한 곳이 있다. ‘윤동주 문학관’이다.

○ 버려진 물탱크가 시(詩)의 공간으로


2012년 7월, 윤동주 문학관은 청운아파트가 철거되며 버려진 물탱크와 가압장 시설에 들어섰다. 물탱크를 활용한 독특한 건축으로 시인 윤동주의 당시 삶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시인이 평소 존경하던 백석 시인의 시집을 필사한 친필원고 영인본(影印本)과 일본 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하고 닷새 후 쓴 ‘참회록’ 원고 영인본도 볼거리다. 원고지 여백에는 당시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듯 ‘시인의 생활’ ‘힘’ ‘詩란?’ 등의 흐린 연필 낙서가 남아 있어 마음을 짠하게 한다.

벽에 물때까지 그대로 남은 커다란 물탱크는 뚜껑만 열어 ‘우물’ 모양의 전시실로 태어났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라는 ‘자화상’ 속 한 대목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우물 위에서 시인이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드는 구조다. 바로 옆 다른 물탱크는 시인이 고문으로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감옥처럼 만들었다. 겨울의 냉기가 아직 남은 이곳에 들어가 시인의 일대기를 다룬 영상을 보다 보니 독방에 갇혀 있던 시인의 고독이 느껴졌다.

○ 문학둘레길 따라 봄의 정취 만끽


문학관 바로 옆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멋진 경치가 펼쳐진다. 윤동주 시인을 기려 만든 ‘시인의 언덕’이다. 윤동주가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주옥같은 시를 쏟아내던 시절 시상을 떠올리기 위해 자주 찾았다는 북악산과 인왕산은 물론이고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언덕 위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가슴이 확 트인다.

내친김에 종로구의 ‘문학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문학관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옛 하숙집터(종로구 옥인길 57)와 청운초등학교 인근 송강 정철 집터(종로구 자하문로 105)와 시비, 이상 시인의 집터에 들어선 ‘제비다방’(종로구 자하문로7길 18)까지 살펴보며 봄의 정취에 빠져보면 어떨까. 단, 하숙집터는 빌라촌으로 변했고, 송강 정철 집터에는 그의 시구를 새긴 돌비석 정도만 남아 있어 아쉽다. 이상 시인을 떠올리며 간단한 차를 마실 수 있는 제비다방은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며 3월 말 다시 문을 연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종로구 창의문로#윤동주 문학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