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dB 고통… 시위소음에 귀 먹먹한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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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야간집회 기준인 70dB 훌쩍
상점 소음 겹쳐 시민피해 커지는데 단속 강화 위한 법규 개정은 표류

‘소음지옥’ 1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3·1절 국민대회’ 행사(애국단체총협의회 주최)에서 대형 스피커 옆에 서 있던 참석자들이 시끄러운 나머지 한 손으로 귀를 막고 있다. 서울광장 인근 건물 근무자들이나 매장 주인들,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각종 집회와 행사 때 발생하는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소음지옥’ 1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3·1절 국민대회’ 행사(애국단체총협의회 주최)에서 대형 스피커 옆에 서 있던 참석자들이 시끄러운 나머지 한 손으로 귀를 막고 있다. 서울광장 인근 건물 근무자들이나 매장 주인들,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각종 집회와 행사 때 발생하는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서울시청 앞 더플라자 호텔의 직원들은 주말만 되면 신경이 곤두선다. 손님인 관광객이 몰려서가 아니다. 매주 바로 앞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집회 때문이다.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만 명이 모이는 집회가 열리면 서울광장 주변은 날카로운 앰프 소리로 가득 찬다. 호텔 직원들은 “집회가 열리면 ‘시끄럽다’는 투숙객들의 항의가 빗발친다”고 하소연했다.

도심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에서는 일정한 소음 발생이 불가피하다. ‘자신의 뜻을 알리는 것’이 집회의 목적이지만 제3자에게는 소음이 불편을 넘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1일 도심 곳곳에서 벌어진 집회와 행사 현장을 찾아 직접 소음 정도를 측정했다. 이날 오후 6시 30분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정원시국회의 주최 ‘자주평화 국민촛불집회’에서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연설을 할 때 연단에서 4m 떨어진 지점에서 측정해 보니 최대 87.6dB(데시벨)이 나왔다. 이곳에서의 야간 집회 소음 허용 기준은 70dB 이하다.

집회 소음만 문제는 아니다. 상가가 밀집한 도심 속 번화가에서는 매일같이 ‘소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5시경 서울 종로3가 이면도로. 15m 간격으로 마주보고 있는 이동통신사 대리점 2곳의 직원들이 거리에 대형 스피커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준비를 마친 두 대리점은 경쟁하듯 음악의 볼륨을 높여 나갔다. 취재팀이 측정한 순간 최대 소음은 81.8dB. 지하철이 선로에 들어올 때의 소음(80dB)과 맞먹었다. 서울의 거리 소음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각종 소음 공해로 시민들의 불편은 커지고 있지만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이를 막을 대책도 마땅하지 않다. 반드시 신고자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 데다 처벌 수위(집회소음은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 원 이하의 벌금, 생활소음은 과태료 20만∼100만 원)도 낮아 실효성이 없다. 경찰 관계자는 “소음 기준을 초과했다고 바로 사법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정 명령에 계속 불응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집회 소음의 경우 경찰은 소음 허용 기준치를 낮추고 더 엄격히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집시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주간 80dB 이하, 야간 70dB 이하로 돼 있는 ‘기타 지역(광장·상업 지역 등)’ 집회 소음 기준을 5dB씩 낮추는 방안이다. 서울광장 인근의 소음 기준을 아예 ‘주거지역 및 학교’ 수준(주간 65dB 이하, 야간 60dB 이하)으로 규제하는 개정안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집회의 자유를 주장하는 일부 시민단체와 야권의 주장에 밀려 시행이 미뤄지고 있다.

백연상 baek@donga.com·조건희 기자
#집회 소음#시위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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