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전북/제주/新 명인열전]호남권 토종 유통업체 Y-마트 김성진 대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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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명 고용창출에 매년 3억 기부

대기업의 무차별 공세 속에서도 Y-마트는 가격 경쟁력과 성실함으로 지방의 골목상권을 지키고 있다. 김성진 대표(가운데)는 단순히 수성에 그치지 않고 대기업의 거점인 수도권 시장에 진출할 계획도 갖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대기업의 무차별 공세 속에서도 Y-마트는 가격 경쟁력과 성실함으로 지방의 골목상권을 지키고 있다. 김성진 대표(가운데)는 단순히 수성에 그치지 않고 대기업의 거점인 수도권 시장에 진출할 계획도 갖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21년 전 광주와 전남 나주, 장성 등지를 돌며 과일 행상을 하던 24세 청년이 있었다. 5월 어느 날 그는 광주 송정리 장터 인근을 지나다 보육원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아이들은 2.5t 트럭에 가득 실려 있는 빨간 딸기를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청년은 밤이 되길 기다렸다. 트럭에 실린 딸기를 몽땅 박스에 담아 몰래 보육원 마당에 두고 나왔다. 그 뒤로도 1주일에 한 번씩 보육원을 몰래 찾아가 과일을 놓고 갔다.

보육원 식구들은 ‘얼굴 없는 천사’가 누군지 궁금했다. ‘잠복근무’ 한 달여 만에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원장과 아이들은 그가 노점상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청년의 ‘과일 기부’는 보육원이 이사 가기 전까지 7년 동안 이어졌다. 청년은 그때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나누면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 뒤, 청년은 광주와 전남북에 62개 매장을 거느린 유통기업 사장이 됐다. 청년 시절부터 시작한 그의 나눔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매년 3억 원을 지역 사회 곳곳에 기탁하고 5000만 원 상당의 야채와 과일을 사회복지시설에 후원하고 있다. 노인과 결혼이주여성을 채용하는 등 소외계층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토종 유통업체의 성공 신화로 불리는 Y-마트(영암마트) 김성진 대표(45)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전남 영암에서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어린 나이에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져야 했다. 둘째 형은 어릴 때 숨졌고 학생운동을 하던 큰형(당시 고려대 총학생회 부회장)이 1989년 행방불명되자 어머니는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리어카 하나로 행상을 시작했다. 오전 3시에 일어나 야채를 싣고 5일장을 돌며 하루에 잠을 3∼4시간만 자며 억척같이 돈을 벌었다.

광주 북구 용봉동 Y-마트 본점 2층에 자리한 바람개비 도서관. 김 대표는 나눔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마트 공간을 무료로 제공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광주 북구 용봉동 Y-마트 본점 2층에 자리한 바람개비 도서관. 김 대표는 나눔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마트 공간을 무료로 제공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Y-마트는 1993년 광주 북구 용봉동에 ‘영암농산물야채직매장’이란 이름으로 차린 구멍가게에서 출발했다. 26m²(약 8평)의 작은 공간에서 20여 년 만에 62개 매장에 1200여 명이 일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김 대표의 치밀한 고객관리와 성실함이 바탕이 됐다. 그는 한 번이라도 매장을 찾은 고객은 반드시 단골로 만드는 집요함이 있었다. 주택이든 아파트든 고객이 주문하면 무조건 달려갔다.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이튿날 오전 1시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전단을 돌렸다.

김 대표는 대형마트보다 싸면서도 질 좋은 상품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농수축산물은 김 대표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고르고 입찰도 직접 한다. 대형마트들이 100원에 구입해 140원에 팔 때 Y-마트는 중간 거래처 없이 구입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110원에 팔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의 경영 방식은 독특하다. 분점을 내려면 반드시 본점에서 2∼3년 동안 사장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은 혹독하다. 매장 청소부터 시작해 배달, 판매, 바이어, 영업 관리 순으로 배우고 하루 14시간씩 일해야 한다. 사장을 하겠다고 10명이 찾아오면 7명은 그만둘 정도다. Y-마트가 ‘창업 사관학교’로 불리는 이유다.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첫 우승을 이끌었던 이상윤 전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54)도 김 대표 매장에서 일을 배우고 창업한 케이스.

일반적인 프랜차이즈의 경우 매출액의 일정분을 본사에 납입해야 하지만 Y-마트는 가맹점 수익금을 단 한 푼도 본점에서 가져가지 않는다. 오히려 직원들이 분점을 낼 때 5000만 원에서 1억 원을 무이자로 빌려 준다.

“직원들에게 무엇보다 초심을 잃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품질 관리와 서비스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창업 성공의 열쇠는 바로 현장에 있습니다.”

그는 싸면서 품질이 좋은 물건을 팔고 소비자에게 신뢰만 쌓는다면 대형마트와 경쟁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광주 두암점, 양산점 등 7개 매장 맞은편에 기업형 슈퍼마켓이 있는데도 입점을 강행한 것은 바로 이런 자신감 때문이다.

그는 3년 안에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100개 매장을 여는 것이 목표다. 그는 “유통업이라는 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해야 하는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지만 땀 흘린 만큼 보상을 받는 정직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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