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해도 너무한 서울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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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용역업체와 수의계약서 입수
업무중 사고는 모두 하청업체 책임… 노조활동 금지… 근로자 해고 가능

서울대가 하청업체와 맺은 계약에 근로자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일방적으로 서울대에 유리한 불공정 조항들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양유업과 아모레퍼시픽 등이 ‘갑(甲)의 횡포’로 논란이 된 데 이어 서울대도 ‘갑의 지위’를 남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울대는 최근 하청업체 근로자를 1급 발암물질 석면에 노출되도록 방치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2013년 서울대가 학교 배관 및 전기시설을 관리하는 중소기업 W사와 맺은 수의계약서를 11일 입수했다. 취재팀은 이 계약서를 13일 대한법률구조공단 및 로펌 변호사들에게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 일방적인 ‘서울대 우위’ 조항

로펌 소속 변호사들은 계약서에 일방적으로 서울대에 유리하고 W사에 불리한 조항들이 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업무 중 일어나는 사고의 모든 책임은 W사가 진다’ ‘계약 해석에 이견이 있으면 서울대의 해석대로 한다’ 등이다. 계약에 따르면 서울대의 노후한 건물에 균열이 가 무너져 근로자가 다쳐도 서울대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

변호사 A 씨는 “무조건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겨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A 씨는 “업체나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원인으로 사고가 나면 서울대도 일정 부분 보상해야 한다”며 “만약 재정능력이 약한 하청업체가 사고 책임을 제대로 지지 못하면 다친 근로자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증축해서 근무량이 늘어도 추가 보수는 지급하지 않고 관리 인력도 늘릴 수 없다는 조항도 있다. 서울대에는 총 221개 동의 건물이 있고 5개 동을 추가로 짓고 있다. 이를 관리하는 W사 근로자는 162명. 변호사 B 씨는 “인력도 늘리지 못하게 하고 상응하는 보수 지급도 거부하면 근로자의 업무 강도가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사실상 해고권’ 행사에 기본권 제한까지

근로자의 헌법상 기본권도 막았다. 계약서에는 ‘근무시간 내 일체의 노조활동을 금지하고 플래카드를 걸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다. A 변호사는 “적법성이나 타당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든 노조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으로 명백히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또 계약에 따르면 서울대는 ‘업무에 부적격한 자’의 교체를 W사에 요구할 수 있고 W사는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근로자 김모 씨는 “우리는 채용 시부터 ‘W사 서울대지부’로 뽑히기 때문에 서울대를 나가면 바로 퇴사당한다”고 설명했다. A 변호사는 “교체 사유가 모호하기 때문에 서울대가 마음대로 근로자를 자를 수 있게 만드는 조항”이라고 말했다.

‘학내를 필요없이 배회하면 안 된다’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행위를 금한다’ 등의 조항은 근로자의 행동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W사의 한 근로자는 “우리를 마치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 속상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계약서는 W사뿐만 아니라 서울대와 계약을 맺은 모든 하청업체에 적용되는 일종의 표준계약서로 밝혀졌다. 서울대와 계약한 하청업체는 20곳이 넘는다. 김형래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최근 다른 대학에서 근로자 분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한다는 보도는 접했는데 우리 학교가 그럴 줄은 몰랐다”며 “학생회에서도 계약서를 자세히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시설지원과 관계자는 “20여 년 동안 써 온 계약서라 미처 살피지 못했다”며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바꾸거나 삭제하겠다”고 해명했다.

이은택 nabi@donga.com·곽도영 기자
#서울대#하청업체#석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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