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돌아, 잘 살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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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이와 함께 제주 바다 방류

“잘 가! 꼭 잘 살아야 해.”

18일 오후 4시 제주 제주시 구좌읍 김녕항에서 서쪽으로 1km 떨어진 해상의 가두리시설 그물이 걷혔다. 불법 포획돼 쇼 공연 등에 이용됐던 남방큰돌고래인 ‘제돌이’(수놈)와 ‘춘삼이’(암놈)는 한동안 가두리시설 안을 맴돌았다. 그동안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아쉬웠기 때문일까…. 잠시 물 위로 고개를 내밀어 취재진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렇게 30분쯤 흘렀을까. 제돌이가 먼저 광활한 바다로 힘차게 헤엄쳐 나가자 춘삼이도 쏜살같이 가두리를 빠져나갔다. 한 시간 뒤, 제돌이는 가두리시설에서 약 4km 떨어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고기 등 먹이사냥을 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비좁은 수족관을 벗어나 4년 만에 다시 바다로 돌아갔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에 앞서 ‘제돌이 야생방류를 위한 시민위원회’는 이날 험난한 야생의 세계로 돌아가는 제돌이와 춘삼이를 위해 인위적으로 제공하는 마지막 먹이인 어린 잿방어 100여 마리를 나눠 줬다. 서울대공원 제돌이 사육사인 박상미 씨(33·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 4년만의 자유… 제돌이는 꿈의 바다로 힘차게 떠났다 ▼

2009년 불법 포획된 뒤 쇼 공연장 등에서 공연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가 18일 야생적응훈련을 마친 뒤 바다로 돌아가기 전 가두리 시설에서 사육사 등과 마지막으로 만났다. 제돌이는 바다로 돌아간 지 한 시간 만에 인근 무인도 주변에서 먹이 사냥을 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009년 불법 포획된 뒤 쇼 공연장 등에서 공연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가 18일 야생적응훈련을 마친 뒤 바다로 돌아가기 전 가두리 시설에서 사육사 등과 마지막으로 만났다. 제돌이는 바다로 돌아간 지 한 시간 만에 인근 무인도 주변에서 먹이 사냥을 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박 씨는 “제돌이는 유난히 사람을 잘 따랐다. 혹시나 바다에서 사람이 그리워 해안으로 접근하다 배와 부딪쳐 다치진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방류에 앞서 제돌이는 ‘1’, 춘삼이는 ‘2’의 숫자 표지와 함께 등지느러미에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했다. 숫자 표지를 보면 육안으로도 돌고래 무리에 합류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들 돌고래는 야생적응훈련 과정에서 빠른 속도로 야생성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등어 등 살아있는 먹이를 섭취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고 잠수시간도 3배 이상 늘어났다.

야생적응훈련을 맡은 제주대 김병엽 교수는 “최종 야생적응훈련을 하는 김녕항 가두리시설 주변에 3차례 야생 돌고래 무리가 나타나 교감을 나누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방류 후 3개월 동안 먹이 섭취, 무리 행동 등을 평가해 야생 방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낸 것은 우리 사회 동물보호 역사의 획기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학대와 잔혹한 도살로부터의 보호에 머물지 않고 동물이 자연에서 타고난 모습 그대로 살아갈 권리를 인정해 준 것이다. 시민위 최재천 위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은 “동물을 애써 험악한 야생으로 몰아내느냐고 비난하는 분들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만약 제돌이라면 폐쇄된 시설에서 10년을 사는 것보다 자연에서 10일을 산다 해도 ‘자유’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방류 연구 축적 결과를 바탕으로 매뉴얼을 제작해 다른 나라에서도 이 같은 일을 할 때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학계와 환경운동단체에 따르면 포획된 해양포유류를 자연으로 방류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 건 있었지만 남방큰돌고래를 방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방류한 고래가 숨진 사례도 있었다. 영화 ‘프리 윌리’의 주인공이었던 범고래 케이코는 자연으로 돌아간 지 1년여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하지만 연구진은 제돌이가 야생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는 “어릴 때 포획된 돌고래들은 야생 바다에 대한 학습이 덜 돼 있어 방류하더라도 생존을 낙관하기 힘들다. 하지만 제돌이와 춘삼이는 야생에서 10년 정도 살다 포획된 것으로 추정돼 다시 바다로 돌아가도 생존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남방큰돌고래의 천적인 범고래는 국내에 출현한 적이 거의 없어 연구진은 제돌이가 물고기잡이용 정치망에 다시 포획되지만 않는다면 정상적으로 무리에 어울려 짝짓기를 하고 돌고래의 평균 수명인 30∼40년까지도 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제돌이와 춘삼이, D-38(일명 삼팔이·암놈)은 2009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돼 돌고래쇼 공연 업체 ‘퍼시픽랜드’에 팔렸다. 이 중 제돌이는 2009년 서울대공원 바다사자 2마리와 맞교환돼 서울대공원에서 쇼를 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3월 제돌이를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돌고래들이 바다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성산 앞바다 해안에서 400m가량 떨어진 곳에 지름 30m 크기의 원형 가두리를 설치했다. 춘삼이와 D-38은 올해 4월 8일, 제돌이는 올해 5월 11일 가두리로 옮겨져 살아있는 고등어, 광어를 먹으며 야생적응훈련을 받아 왔다. 6월 22일 돌고래 D-38이 태풍의 영향으로 그물이 찢긴 가두리를 빠져나갔는데 6월 27일 야생 돌고래 무리와 함께 이동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제돌이와 춘삼이는 6월 26일 방류지인 제주 김녕 앞바다로 옮겨져 적응 훈련을 받았다.

구좌읍 김녕리 어촌계는 이날 제돌이 등이 야생적응훈련을 받은 가두리시설 인근 해안에 ‘제돌이의 꿈은 바다였습니다’라는 제목의 높이 2m짜리 표석을 세웠다. 디딤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서울대공원에서 공연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시민의 뜻으로 이곳에서 방류되었습니다.’

:: 남방큰돌고래 ::

고래목 참돌고랫과의 포유류. 등이 회색이고 배 쪽은 밝은 회색이며 5∼15마리씩 무리지어 생활한다. 성체가 되면 몸길이 2.6m, 몸무게 230kg이 되며 수명은 25∼40년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에 걸쳐 두루 서식한다. 국내에서는 100여 마리가 제주 부근 바다에서만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임재영 기자·이서현 기자 jy788@donga.com
#돌고래#제돌이#야생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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