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남편 뒷바라지로 진 빚 이혼때 나눠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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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13명중 8명이 찬성 의견 ‘재산보다 빚 많으면 재산분할 불가’
1997년 판례 처음으로 뒤집어

아내가 남편을 내조하느라 빚을 진 상태에서 이혼할 경우 남편도 빚을 나눠 짊어지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혼할 때 재산을 나눠 갖는 것처럼 빚도 나눌 수 있다는 취지의 첫 대법원 판결이다. 그동안 대법원은 빚이 부부 총 재산보다 많은 경우에는 아예 재산분할을 허용하지 않았고, 재산이 빚보다 많은 경우에도 빚은 나누지 않는 판례를 유지해왔다.

▶본보 14일자 A10면 부인이 남편 뒷바라지하다 떠안은 빚, 이혼때 나눌수 있을까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홀로 빚 3억600여만 원을 지게 됐으니 재산분할로 빚도 나눠 달라”며 부인 B 씨(39)가 남편 A 씨(43)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부인 일부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나눌 수 있는 재산이 빚밖에 없더라도 부인이 빚을 지게 된 경위나 빚의 성질 등을 고려해 빚을 나눌 수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법원은 1997년 판례에 따라 “재산분할은 나눌 수 있는 실질적인 재산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빚이 재산보다 많을 때에는 재산분할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견해였다.

2001년 결혼한 부인 B 씨는 정당 활동을 하는 남편이 살림에 도움을 주지 못해 홀로 개인과외를 하면서 가계를 꾸려왔다. B 씨는 남편의 선거자금과 활동비 등을 지원하려고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보험사 대출을 받아 3억600여만 원의 빚까지 졌다. 그러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B 씨는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1·2심은 “A 씨가 B 씨에게 위자료 5000만 원을 지급하라”면서도 재산분할 청구에 대해서는 “부부의 총 재산보다 빚이 더 많아 나눌 재산이 없다”며 기존 판례를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관 13명 중 8명은 다수의견으로 “채무의 성질, 채권자와의 관계 등을 참작해 부부가 빚을 나누도록 하는 게 적합하다”고 인정했다. 다만 이상훈 대법관과 김소영 대법관은 “남편이 직장을 다니고 아내는 전업주부인 경우, 남편의 실직이나 사업 실패로 지게 된 남편 명의의 빚의 일부분을 아내가 함께 부담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부당할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부인 B 씨가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홀로 떠안게 된 3억600여만 원의 빚은 파기환송심에서 분담비율과 방법 등을 정하게 된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고 양성평등을 지향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대법#이혼#뒷바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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