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음식, 백화점에 초대받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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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떡갈비… 손가락 김밥… 씨앗 호떡… 회오리 감자…

부산 국제시장의 명물 ‘씨앗호떡’을 파는 롯데백화점 광복점 지하 식품관. 롯데백화점 제공
부산 국제시장의 명물 ‘씨앗호떡’을 파는 롯데백화점 광복점 지하 식품관. 롯데백화점 제공
“대기업 직원들이 찾아온 건 처음이었어요.”

서울 중구 명동에서 ‘명동 떡갈비’ 노점을 운영하는 유용찬 씨(52)는 이달 초 이마트 죽전점에 떡갈비 매장을 냈다.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은 그는 1998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두 달 전 이마트 직원들이 찾아와 사업 제안을 했을 때만 해도 정중히 거절했다. 굳이 대형마트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장 수수료를 낮춰 주겠다” “음식 만드는 인력도 고용해 주겠다”며 계속 설득하자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대형마트를 찾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떡갈비를 소개할 수 있고 사업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마트 죽전점에 들어선 ‘명동 떡갈비’ 매장. 이마트 제공
이마트 죽전점에 들어선 ‘명동 떡갈비’ 매장. 이마트 제공
이마트는 다음 달에는 ‘마약 김밥’(중독성이 있을 정도로 맛이 있다는 뜻)으로 불리는 서울 광장시장의 ‘손가락 김밥’도 들여올 계획이다. 홍익대 앞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봉다리(봉지) 주스’는 가공식품 형태로 이마트에 진출한다.

한때 비위생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노점과 시장의 ‘길거리 간식’들이 최근 백화점과 대형마트, 제과업체 등 대기업을 통해 상품화되고 있다. 한 번쯤 먹어봤을 법한 친근함을 바탕으로 손님을 끌 수 있어 실패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특색 있는 상품을 통해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움직임”이라며 “불황을 맞아 싼값에 부담 없이 즐기려는 사람들의 소비심리와도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호떡에 해바라기씨 등 견과류를 넣은 ‘씨앗 호떡’은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의 명물로 꼽히는 노점 음식이다. 롯데백화점 광복점,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디큐브시티 지하 식품관에 매장이 들어섰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방송에서 연예인 이승기가 먹어 화제가 된 점포를 찾아가 사업 제안을 했다”며 “점포 이름도 ‘승기 씨앗 찹쌀 호떡’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최근 서울 명동의 ‘회오리 감자’를 본떠 ‘돌풍감자’를 내놨다. 박우흠 크라운해태제과 스낵 브랜드매니저팀장은 “유명 노점 음식을 주제로 한 제품은 다른 제품에 비해 시장 진입이 쉽고 마케팅 비용이 덜 든다”고 전했다.

노점 음식은 특허 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원조를 찾기 힘들다. 기업들은 그 지역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거나 유명한 노점 상인을 찾아가 일대일로 계약한다. 상설로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짧게는 2주에서 2, 3개월 단위로 ‘기간 한정 계약’을 맺는 곳도 있다. 입점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노점 상인이 많아 매출 수수료를 다른 매장보다 5∼10% 낮춰 주고 운영 인력을 고용해 주는 등 혜택을 주기도 한다.

대기업의 노점 음식 사업에 대해 긍정적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지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노점 음식이 유통업체에 들어오는 것은 벤처회사와 대기업 간의 기술 제휴를 통한 상생 모델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대기업에 선택된 특정 노점 외에 다른 상인들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노점상총연합회는 노점 사업을 보호하고 대기업의 노점 사업 진출에 반대하기 위해 다음 달 단체행동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덕휘 전국노점상총연합회 회장은 “대기업들이 상생이라고 하지만 실은 노점 사업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길거리음식#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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