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자녀 선행학습 시키는 교사의 고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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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된 사교육을 억제하고 침체된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 이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핵심정책은 이른바 ‘선행학습금지법(공교육정상화촉진법)’.

학교교육과정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규정된 수업 진도보다 앞선 교과내용을 학원에서 지도할 경우 이는 정상적인 공교육 운영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규정해 엄단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사교육 과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진 않다. 교사이자 학부모인 A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경기지역 초등학교 교사 A 씨는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워킹맘. 그는 지난해 여름까지 ‘남들도 다 보낸다’는 보습학원에 딸을 보내본 적이 없었다. 딸의 책꽂이에 꽂힌 학습교재는 교육방송(EBS) 교재 정도가 전부. 성적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4과목 평균이 90점을 넘었다. A 씨는 특별히 딸의 공부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A 씨와 남편, 조카 등 한 집에 현직 교사가 세 명이나 살다 보니 딸을 학원에 보낼 필요는 더욱 없다고 생각한 것.

A 씨가 딸의 손을 잡고 지역 보습학원을 찾은 것은 지난해 2학기 시작 전이었다. 딸의 1학기 성적을 본 A 씨는 충격에 휩싸였다. 영어 수학 점수는 70∼80점대. 일부 과목은 50점대로 곤두박질쳤다. 학원이라면 무조건 거부하던 남편도 ‘학교 공부만으로는 아무래도 성적 유지가 어렵겠다’고 판단해 영어와 수학을 1학기 선행학습하는 학원에 딸을 보내기로 했다.

교육열이 서울 강남 못잖게 뜨거운 경기 분당지역의 학교 중 특히 학업경쟁이 치열하기로 소문난 딸의 학교는 시험이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된다고 A 씨는 생각했다.

현재 중학교 1, 2학년에 이른바 ‘절대평가’(성취평가제)가 실시되는 만큼 학교 시험은 개별 학생이 교육목표에 도달했는지를 가늠하는 수준이면 충분하지만 ‘시험을 더 어렵게 출제해 달라’는 학부모의 요구가 워낙 거세 교사도 어쩔 수 없이 문제를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A 씨의 분석이었다. 특히 학교시험에서 출제비율이 확대된 서술형·논술형 문제를 모두 맞히려면 사실상 학교 수업만으로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A 씨가 1년 동안 딸을 학원에 보내 선행학습을 시킨 결과는 어땠을까. 딸이 한 달 전 치른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국어 96점, 영어 84점, 수학 78점. A 씨 부부가 놀란 점은 딸이 학원에서 선행학습 수업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즐긴다’는 사실. A 씨는 “평소 딸에게 수학을 가르쳐줄 때도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며 최대한 사고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려고 했는데, 딸은 핵심 개념과 문제 풀이방법을 콕콕 짚어주는 학원의 강의 방식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A 씨는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계속 하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시험 성적이 높은 현실은 인정한다”면서도 “학원에 오랜 시간 앉아 다량의 문제풀이를 반복 훈련하면 당장 시험 문제는 잘 맞힐 수 있겠지만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학업 ‘역량’이 높아졌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강훈 기자 ygh8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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