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가진 한국 어린이, 행복지수는 8개국 중 7위 그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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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웃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다]
세계최초 발표 ‘국제행복지수’
8개국 어린이들과 비교해보니

[어린이가 웃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다] 8개국 어린이행복지수 비교
공기업 부장으로 일하는 우모 씨(52)는 최근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태블릿 PC를 한 대 사 줬다. 초등학교 6학년인 늦둥이 아들은 이미 스마트폰과 개인 노트북을 갖고 있다. 입사해서야 컴퓨터를 처음 만졌던 우 씨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희들은 참 행복한 세상에 태어났구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이 땅의 어린이는 얼마나 행복할까? 국제아동지표학회 소속 10개국 연구진이 세계 처음으로 산출해 27일 발표한 국제어린이행복종합지수를 보면 한국 어린이는 기대만큼 행복하지 않다.

○ 행복과 경제력이 일치하지 않아

평균 100점을 기준으로 산정한 국제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90.3점을 얻어 이번 조사 대상 8개국 중 7위에 그쳤다. 특히 한국의 순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 이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뒤졌다.

심지어 1인당 GDP가 한국의 5분의 1 수준인 알제리(6위·99.5점)보다 순위가 낮았다. 경제력이 한국의 40분의 1에 불과한 우간다(8위·80.9점)를 앞질러 최하위를 면했을 뿐이다. 이처럼 한국 어린이는 높은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는 상당히 빈곤하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한국 어린이는 괜찮은 옷, 개인 컴퓨터, 인터넷 접근권, 휴대전화의 4가지 품목 중 평균 3.83개를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8개국 평균치인 3.36개보다 많았다. 가난한 나라인 알제리(1.71개)의 2배, 우간다(0.87개)의 4배가 넘는다. 하지만 국내 어린이의 경제 여건 만족도는 8개국 중 7위(98.4점)에 그쳤다.

국제행복지수 개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이봉주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어린이의 성장 환경은 저개발국가 수준임이 드러났다. 경제 수준에 걸맞게 아동의 삶의 질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김선숙 한국교통대 교수(사회복지학과)도 “한국 사회는 양극화가 심해 상대적 박탈감이 큰 구조다. 다른 나라에 비해 먹고살 만해도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지 알기 어렵다. 어린이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 한국 어린이 왜 불행한가?

국제행복지수의 8개 영역 결과를 살펴보면 어린이가 놓인 현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학교 만족도(83.9점)와 시간활용에 대한 만족도(82.7점)가 각각 8개국 중 최하위였다. 사교육에 치여 학교생활에 소홀하고 여가를 보낼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확인된다.

유조안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한국은 행복한 미래를 담보로 아동기를 희생시키고 있다. 행복한 유년기 없이 전인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국가가 교육의 획기적 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행복감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진 가정과 대인관계 만족도에서도 한국 어린이는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가정(98.1점)과 대인관계(98.4점) 만족도 모두 8개국 중 7위에 그쳤다.

‘가족활동’에 가장 소극적인 나라 역시 한국이었다. ‘가족과 함께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자주 갖는가?’라는 세부 질문에 한국 어린이는 3점 만점에 평균 1.52점을 적어 내 8개국 중 가장 낮았다. 어른이 어린이의 권리를 얼마나 지켜주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도 최하위.

한국 어린이는 자기 건강에 대한 만족도 역시 떨어졌다. 오랜 내전으로 인한 기아 문제가 심각한 우간다(8위·83.2점)보다 약간 높은 7위(86.7점).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행복감이 떨어지면 자신의 건강에 대한 확신도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안재진 숙명여대 교수(아동복지학과)는 “어린이의 권리의식은 높아졌지만 사회가 이를 못 따라간다. 어린이를 가정의 주요 주체로 인정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린이 행복도 8개영역 나눠 수치화… 10개국 공동개발



■ 국제어린이행복종합지수란


국제어린이행복종합지수는 어린이가 느끼는 행복도를 8개 영역, 29개 항목으로 물어 수치화한 세계 최초의 지표다. 한국 미국 영국 이스라엘 스페인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알제리 등 국제아동지표학회 소속 10개국 연구진이 공동 개발했다. 지금까지는 유니세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가별 어린이 행복감을 발표했지만 평가항목이 단순했다.

이번에 발표한 어린이행복종합지수 산출에는 8개국의 어린이 1만4030명(만 12세)이 참여했다. 한국 조사는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공동 진행했고 동아일보가 후원했다. 국내 16개 시도별 어린이행복종합지수는 2일자 A1·19면에 발표됐다. 국제아동지표학회는 앞으로 조사 대상국을 늘리고 최소 2년에 한 차례씩 지수를 발표할 예정이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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