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깜깜한 모텔방서 혼자 울던 4세 아이 어린이집에 보호… “위기가정의 보호막 역할 뿌듯”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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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복지사들이 긍지 느끼는 긴급복지지원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은 소외계층의 손과 발이 돼 밤낮으로 일을 한다. 이들이 고된 업무에도 큰 보람을 느끼는 일 중 하나가 절박한 상황에 놓인 소외계층을 찾아내 돕는 것이다. 20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한 광주 북구 주민생활지원과 희망복지지원단 김형기 씨(52·7급)는 최근 위기상황에 놓인 미혼모 모녀를 도우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지난달 19일 주부 오모 씨(55)가 북구 운암동 동사무소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 오 씨는 “네 살배기 여자아이가 밤에 자주 모텔 방에 혼자 남겨져 있다. 엄마가 경제능력이 없어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오 씨는 지난달 북구 한 병원에서 30대 미혼모 A 씨 모녀와 병실을 같이 쓰면서 이 모녀의 딱한 사연을 알게 됐다. A 씨의 39개월 된 딸은 모텔 침대 모서리에 다리가 끼어 골절상을 입고 2주간 입원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A 씨는 2009년 11월 미혼모 시설에서 딸을 낳은 뒤 친정집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친정엄마가 손녀를 학대한다고 생각해 올 1월 무작정 집을 나와 북구 한 모텔에서 생활했다.

모텔 하루 숙박비는 2만5000원. A 씨는 한글도 몰랐고 숫자나 시간, 계절 감각이 없어 정상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처지였다.

A 씨는 노래방 도우미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A 씨가 밤에 아르바이트를 나갈 때 딸은 혼자 모텔 방에 남겨둬야 했다. A 씨는 딸이 깨어있을 때 모텔 주인에게 ‘봐 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자고 있을 때는 불을 꺼놓고 나갔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 깜깜한 모텔에서 혼자 울부짖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A 씨 모녀의 사연은 북구 주민생활지원과 희망복지지원단에 곧바로 전해졌다. 김 씨 등 사회복지사 2명은 A 씨가 살던 모텔로 가 모녀의 위기 상황을 파악했다. 모텔 숙박비가 35만 원 밀려 있는 등 어려운 상황이었다. 희망복지지원단은 A 씨가 모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월세로 원룸을 얻어줬다. 딸은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겨 보호하고 주말에 데려올 수 있도록 했다. 생활비를 긴급 지원한 뒤 기초수급자로 선정되도록 도왔다. 김 사회복지사는 “A 씨를 검사를 통해 장애인으로 등록하려 했지만 본인이 거부하고 있다”며 “A 씨 모녀를 월세 8만 원인 주택공사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돕고 우선 장애인으로 등록해 복지시설에 입소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에서 발굴된 긴급복지지원 대상자는 2010년 3993가구, 2011년 3628가구, 2012년 3666가구였다. 긴급복지지원 대상자 상당수는 A 씨 모녀처럼 절박한 상황에 놓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광주시는 올해 긴급복지지원 대상자를 30% 이상 늘릴 계획이다. 정수택 광주시 사회복지과장은 “이웃 주민들이 어려움에 처한 위기가정을 동사무소 등에 알려주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위기가정이 늘고 있지만 긴급복지지원 요건이 까다로워 신청자의 10∼15%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원액이 적고 지원 기간도 짧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용교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53)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나고 불황이 장기화돼 위기가정이 증가하고 있다”며 “정부나 자치단체가 위기가정을 발굴해 보호막을 만들어주고 기초수급자를 수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사회복지사#긴급복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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