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젊은날의 초상 ‘500원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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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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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푼이 아쉬운 10, 20대… ‘사소한 일거리’ 온라인 올려
모닝콜… 손편지… 욕 듣기… “뭐든지 한다” 위험수위도


“일어나세요∼ 출근하셔야죠∼.”

전직 텔레마케터인 이모 씨(21·여)는 평일 오전 7시면 은행원 김모 씨(28)에게 전화를 걸어준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모닝콜을 해주는 것이다. 이 씨는 온라인 중고마켓의 ‘재능공유’ 코너를 통해 김 씨를 알게 됐다. 얼굴도 모르는 김 씨로부터 모닝콜 1건에 500원씩, 월단위로 계좌를 통해 수고비를 받는다.

온라인 중고시장인 ‘헬로마켓’의 ‘재능공유’ 코너에는 ‘500원 모닝콜’ 같은 저렴한 아르바이트가 1000개 이상 등록돼 있다. 손으로 쓴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 주기 2000원, 택배 대신 받아주기 1000원, 강의 대리출석 1000원…. 고민 상담은 카카오톡을 이용하면 1500원, 전화 2000원, 영상통화 상담은 3000원 등이다. 5분 동안 어떤 욕이든지 다 들어주는 ‘서글픈’ 상품은 5000원에 올라 있다.

고객의 눈길을 끌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아이디 ‘겸***’을 쓰는 여성은 자신이 필리핀의 한 대학교 심리학과 휴학생이라며 전문적인 상담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잘 나온 얼굴사진을 걸어 둔 남녀도 많다.

이들은 주로 용돈이나 생활비를 벌려는 10, 20대다. 카톡을 통해 건당 1500원을 받고 고민상담을 해주는 대학생 임모 씨(19)는 “시작한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벌써 5명에게 연락이 왔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상담한다”라고 말했다. 모닝콜 아르바이트를 하는 A 양(16)은 “공부와 병행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친구가 추천해 줘서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마켓 관계자는 “하루 평균 5만∼10만 명이 방문한다. 우리와 비슷한 업체가 10여 곳 더 있다”라고 말했다.

전화번호를 주고받다 보니 남자가 여자에게 만남을 강요하는 등의 부작용도 종종 생긴다. 일부 급전이 절박한 이들은 “시켜만 주면 뭐든 한다. 가격만 높으면 동성연애도 가능하다. 가격은 협의”라고 쓰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시대 가난한 젊음의 자화상’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판매자는 생활 속 사소한 일까지 대신 해주면서 돈을 벌어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구매자는 정서적 위안을 돈을 주고 사야 할 만큼 삶이 팍팍하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얼마나 힘들고 의지할 곳이 없으면 이런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하겠는가. 청춘의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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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중고장터#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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