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컬처 IN 메트로]골목자체가 미장센… 추격신 부르는 ‘미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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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문구 북아현동 주택가

①‘추격자’ 속 두 배우가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을 벌였던 북아현동 골목길. ②‘체포왕’에서 두 형사가 범인을 쫓는 장면을 찍은 북아현동 빨간 벽돌집 옥상. 비단길·씨네2000 제공
①‘추격자’ 속 두 배우가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을 벌였던 북아현동 골목길. ②‘체포왕’에서 두 형사가 범인을 쫓는 장면을 찍은 북아현동 빨간 벽돌집 옥상. 비단길·씨네2000 제공
2007년 개봉한 영화 ‘추격자’ 하면 떠오르는 동네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이다. 망원동은 주인공 지영민(하정우)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곳으로 설정됐다. 지영민이 망원동 골목길에서 마주친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를 피해 달아나면서 시작되는 추격전. 이들이 추격전을 벌이는 골목은 막다른 골목인 듯하다가도 가지를 치듯 나뉘며 미로처럼 뻗어나간다. 그 복잡함만으로도 추격전의 긴장감은 배가된다.

사실 이 골목길은 망원동 주택가 골목이 아니다. 실제 촬영 장소는 서대문구 북아현동. 이곳에 핏줄처럼 퍼진 골목에서 진행됐다.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 속 주요 공간이 모든 주택들이 모여 있는 ‘세상의 축소판’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기를 원했다”라고 했다.

실제로 북아현동은 마을 초입부터 뒷산 자락까지 다양한 형태의 집이 모여 있다. 이 일대는 1970년대까지 유력 인사들이 모여 살던 부촌이었다. 그러나 강남과 강북의 성북동, 평창동으로 유력 인사들이 이주하면서 부촌의 명성은 사라졌다.

산동네에는 축대 위에 위태롭게 지은 30, 40년 된 작은 벽돌집이 뒤섞여 있다. 북아현동의 메인도로인 능안로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옥상이 맞닿을 정도로 딱 붙은 기와집과 이들을 허물고 지은 연립주택, 찍어낸 듯 비슷한 낡은 빨간 벽돌집, 대충 시멘트를 바른 뒤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놓은 집이 혼재해 있다. 이 주택들 사이로 어른 두 명이 지나가면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좁은 골목길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1960년대 이후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땅을 아껴 집을 짓다 보니 좁은 골목길이 형성된 것. 이후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체포왕’의 임찬익 감독은 이곳에서 마포발바리(성폭행범)를 잡기 위해 형사들이 경쟁하며 추격하는 장면을 담았다. 임 감독은 “수많은 골목이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 같아 매력적이었다”라며 “이곳이 재개발로 사라지기 전에 영상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추격 장면을 5줄로 간단하게 담았지만 ‘미로’의 매력에 빠진 임 감독은 영화의 8분을 추격 장면에 썼다.

2005년 북아현동이 뉴타운으로 지정되고 2011년부터 재개발을 위한 철거가 시작됐다. 아현시장이 있던 곳 등 이미 철거가 진행된 지역은 철판으로 얼기설기 둘러싸인 채 거대한 황무지로 변했다. 이미 상당수 미로는 사라졌고 사라질 예정이다. 옥상 추격 장면을 촬영하기 좋을 정도로 가깝게 붙어 있었던 빨간 벽돌집들도 곧 허물어져 아파트로 다시 태어난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추격자#망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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