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소방관 337명 꼴 죽고 다치는데 내놓은 안전대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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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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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추적 시스템 보급 ‘재탕’ 순직사고땐 서장 문책 ‘맹탕’
9일 소방의 날 50주년

빌라 화재 현장서 어린이 구출 소방대원이 불길에 휩싸인 건물에서 어린이를 구조하고 있다. 서울 구로소방서는 9일 구로구 온수동 빌라 지하 1층 창고에서 담배꽁초 불씨가 쓰레기봉투에 옮겨붙어 일어난 화재로 350여만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건물에 고립됐던 5명은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구로소방서 제공
빌라 화재 현장서 어린이 구출 소방대원이 불길에 휩싸인 건물에서 어린이를 구조하고 있다. 서울 구로소방서는 9일 구로구 온수동 빌라 지하 1층 창고에서 담배꽁초 불씨가 쓰레기봉투에 옮겨붙어 일어난 화재로 350여만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건물에 고립됐던 5명은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구로소방서 제공
“나쁜 연기를 들이마셨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냥 삼겹살이 좋다고 해 매일 먹고 있죠.”

9일 만난 인천서부소방서 연희119안전센터 최석진 소방장(47)은 인터뷰 도중에도 연신 기침을 했다. 그는 8월 인천 서구의 페인트원료창고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가 부상을 당했다. 화재 진압 도중 안전지대로 대피할 시간이 없어 현장에서 공기호흡기 통을 교환하다가 1분이 넘도록 유독가스에 노출된 것. 그는 인천시 소방안전본부 지정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지만 전문의를 만날 수는 없었다. 중앙소방전문치료센터가 있는 경찰병원에 전화를 해봐도 한 달 이상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포기했다. 이곳저곳 병원을 다니며 쓴 치료비 40만 원도 아직 받지 못했다. 최 소방장은 “치료비도 받지 못한 내 모습을 처연하게 바라본 아내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씁쓸해했다.

9일은 50회째를 맞은 소방의 날이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소방관들은 오늘도 열악한 처우와 근무 여건 속에 신음하고 있다.

○ 안전대책 내놨지만 현장 반응은 냉랭

방재청은 이날 재해 현장에 투입된 모든 소방대원의 위치와 생체 정보까지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인 ‘대원 위치추적 시스템’을 개발해 보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안전수칙도 강화해 2인 1조 활동이나 개인 안전장비 착용 같은 현행 규정을 위반한 소방관은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안전관리 소홀로 순직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소방관서장을 엄중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선 소방관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14년째 현장에서 뛰고 있는 A 소방관(43)은 “생명과 직결된 개인장비는 착용하지 말라고 해도 현장에서 착용하고 있는데 무슨 대책이 그러냐”며 “순직자 발생 시 서장을 징계한다는 것은 소극적 현장 대처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아 국민의 생명과 재산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된 대책 중 대부분은 이미 이전부터 진행돼 오던 사업이다.

○ 한 해 300명 다쳐도 전문병원 없어

매년 평균 7명의 소방관이 현장에서 순직하고, 330여 명이 다친다. 공상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를 포함하면 훨씬 많은 수의 소방관이 현장에서 부상을 당한다. 하지만 이들을 제대로 보살펴 줄 전문병원조차 없다.

방재청은 2007년 경찰병원 안에 소방치료센터를 설치했다. 치료센터는 입원비·치료비 등이 무료다. 하지만 지방에서 다친 소방관이 서울까지 올라와 치료를 받기는 쉽지 않다. 진료를 보려면 최소 한 달은 기다려야 해 소방관들이 꺼린다. 공무상 부상으로 인정을 받아 치료비를 받으려면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공무상 요양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절차가 복잡해 상당수 소방관들은 큰 부상이 아니면 자비로 치료를 한다. 공상자로 인정을 받더라도 병원 치료비만 지원해 줄 뿐 요양에 필요한 비용은 지원되지 않는다.


화재·구조현장에서 참혹한 광경을 목격해야 하는 소방관 상당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린다. 지난해 전국 소방관 3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방재청 조사에서 조사 대상의 약 5%인 1452명이 PTSD 정밀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하지만 이들을 제대로 돌봐주는 시스템은 정신건강 교육 프로그램 정도다. 15년간 구급대원으로 활동한 김모 소방장(48·여)은 “목매달아 죽은 사람, 지하철에 투신한 사람 등의 시체를 자주 처리하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와 2년 전부터 동네 정신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5억8000여만 원을 들여 심신건강관리캠프를 운영했지만 혜택을 받은 사람은 1000여 명에 불과하다.

업무상 순직해도 현충원에 안장되기 어렵다. 업무 중 순직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경찰이나 군인과 달리 소방관은 화재진압이나 인명구조, 구급업무 현장에서 순직해야만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35명의 소방관이 순직했지만 이 중 25명만 현충원에 안장됐다. 안장이 거부된 10명은 업무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거나 고양이를 구조하다가 추락사한 소방관 등이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소방관#사고#안전#순직#소방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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