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산부인과 의사가 女환자 시신 유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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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만에 자수… “수면유도제 투여후 사망” 주장

40대 남자 산부인과 의사가 30대 여성의 시신을 버리고 달아났다가 경찰에 자수했다. 숨진 여성은 1년 전 문제의 의사로부터 수술을 받은 것을 계기로 내연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일 강남구 신사동의 한 산부인과 소속 의사 김모 씨(45)를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경찰에서 “7월 30일 오후 10시 반경 산부인과에서 A 씨(30·여)에게 수면유도제인 ‘미다졸람’ 5mg을 주사로 투여했다”며 “주사를 맞고 잠든 A 씨를 두 시간쯤 뒤 깨우러 갔을 때 이미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진료 중에 환자가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 병원에 누를 끼치고 나 자신과 아내, 가족의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의사 7, 8명이 근무하는 중대형 산부인과의 ‘월급의사’다. 산모들이 많이 찾는 유명 인터넷카페에는 김 씨에 대해 “푸근하고 친절하다” “실력 있고 믿음이 간다”는 내용의 글이 많이 올라 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사건 당시 개인적으로 A 씨와 약속을 하고 병원에서 따로 만난 것으로 파악됐다. 김 씨 진술과 달리 정식 진료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 씨는 외부 술자리에 참석했다 술에 취한 채 병원에 와 A 씨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유부남인 김 씨는 1년 전 진료를 계기로 A 씨를 알게 돼 종종 병원에서 만남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A 씨가 사망한 지 23시간 만인 7월 31일 오후 9시 반경 변호사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 자수했다. 김 씨는 “시신을 유기한 것에 죄책감을 느껴 자수를 결심했다”고 밝혔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우선 단순 의료사고로 처리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적발되면 훨씬 중한 처벌을 받는 시신 유기를 선택한 김 씨의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 업무상 과실치사는 5년 이하 징역에 처하지만 사체유기는 7년 이하 징역을 선고받는다.

김 씨는 시신을 옮기는 과정에서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숨진 A 씨에게 마스크를 씌운 채 휠체어에 태워 지하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승용차로 옮긴 뒤 조수석에 앉혔다. 출발하려던 김 씨는 병원 측의 ‘진료 콜’을 받고 다시 병원에 들어갔다. 3시간가량 진료를 하고 나온 김 씨는 31일 오전 4시 반경 자신의 차에 있던 시신을 A 씨의 아우디 차량 조수석으로 옮긴 뒤 그 차를 몰고 한강잠원지구 주차장으로 갔다. 김 씨는 차를 주차장에 둔 채 떠났다. 이날 오후 한 시민이 숨져 있는 A 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A 씨에게 종종 약물을 투입한 뒤 성관계를 맺어 온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날 A 씨가 갑자기 숨지자 당황해 시신을 유기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 씨가 A 씨에게 투여한 수면유도제 ‘미다졸람’은 향정신성의약품인 만큼 사용할 땐 병원 측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김 씨는 그런 절차 없이 임의로 약을 빼다 쓴 것으로 조사됐다.

A 씨 시신에 외상 흔적은 없었지만 수면유도제 투입만으로 사망했다는 것도 의문스럽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평소 우울증과 불면증이 있었고 사건 당일 피곤하다며 수면진정제를 놓아 달라고 했다”며 “미다졸람 5mg 외에 다른 약물을 투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다졸람 5mg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교실 김희수 교수는 “미다졸람은 수면내시경 등에 흔하게 사용하는 약품으로 5mg만으로 사망에 이를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며 “어린이에게도 통상 그 정도 양을 투입한다. 100차례 이상 한꺼번에 맞지 않는 이상 사망에 이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미다졸람을 과다 복용했을 경우 해독제를 투여하면 위급상황을 넘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A 씨에게 수면유도제를 투여할 때와 숨이 멎어 심폐소생술을 시도할 때 모두 간호사 없이 혼자 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병원에는 다른 당직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었지만 김 씨가 심폐소생술을 할 정도의 위급상황에서 다른 의료진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

죄책감을 참지 못해 자수를 선택했다는 김 씨의 진술도 의심스럽다. 김 씨가 변호사와 함께 자수를 하러 온 시간은 A 씨의 시신이 발견된 지 3시간 만이었다. 한 범죄 심리학과 교수는 “김 씨가 변호사와 상의한 뒤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자수를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단순 과실치사가 아니라 A 씨가 살해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채널A 영상] “옆차 안 여자가 이상한 자세로 있길래 신고”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산부인과#시신 유기#사건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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