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 해줘요… 모두 공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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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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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뻔한 요구에 멍드는 기부

“원래 다 공짜로 해주는 것 아닌가요?”

박&윤공공미술연구소 박병철 대표(51)는 얼마 전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시의 한 고물상 벽에 그림을 그려준 뒤 재능기부의 보람을 느껴 전국 시골마을을 돌며 벽화를 그리고 있는 박 대표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도 ‘공짜’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구했다.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마을에 한해 재능기부를 하고 물품비 등 일부 비용은 마을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박 대표는 “재능기부가 알려지면서 무조건 공짜로 해달라는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며 “왜 우리만 차별하느냐고 따지거나 공짜 아니면 필요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볼 때면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농촌마을을 찾아 트위터와 페이스북 이용법을 가르치는 재능기부를 시작한 김태헌 씨(31)도 ‘공짜 기부 요구’에 곤혹스럽다. 김 씨는 대학 홍보팀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담당했던 경험을 살려 재능기부를 결심한 뒤 강원 원주시의 한 마을에 다녀왔다. 이후 불과 한 달 사이 재능기부를 부탁하는 전화를 10통 넘게 받았다. 농촌마을이 아니면 강의료 30만 원을 받는다고 대답하면 ‘공짜로 강의 다니면서 왜 우리에게만 돈을 받으려고 하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씨는 “충분한 예산이 있을 법한 단체가 공짜 강의를 요구하면 솔직히 화가 난다”고 말했다.

최근 재능기부를 명목으로 무료로 아이디어나 강의를 요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또 일부 단체나 개인들은 재능기부가 단순히 공짜라는 생각에 재능기부자에게 반말을 하거나 심할 경우 욕설을 하기도 한다.

5월부터 문화적 소외지역을 돌며 전통공연을 하거나 노인 미용, 이발 등의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백토문화예술원도 재능기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을 때가 많다. ‘여기저기서 보조금 받으면 쏠쏠하겠다’ ‘실적 쌓으려고 재능기부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말을 듣기 일쑤다. 사무국장 최옥섭 씨(35)는 “최선을 다해 공연을 마쳐도 ‘공짜라서 질이 떨어진다’고 말하거나 심할 경우 똑바로 하라며 욕설을 하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본인의 재능기부 사례를 엮어 만든 에세이집 ‘내가 즐거우면 세상도 즐겁다’ 저자인 일러스트레이터 장석원 씨(42)는 “재능기부자들이 가진 재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단지 받아내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들로 인해 재능기부의 가치가 훼손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재능기부라는 이름을 빌려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사례도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이정석 재능기부담당사무관은 “농촌마을에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접근하는 일부 홍보업체들 가운데는 실제론 자기 업체를 홍보하거나 농산물 판매자들에게 홈페이지 제작 제안을 하는 등 사업 영역을 넓힐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재능기부자 선정에 신중을 다하지만 속마음까지 다 알 수는 없어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트위터 팔로어나 블로그 방문자 수를 내세우며 홍보를 해주겠다고 하거나 SNS 기술을 알려주겠다고 하지만 실제론 사업을 확장하려는 속셈인 경우도 적지 않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부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재능기부를 지속시키려면 재능기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홍보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재능기부#피해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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