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가건물 사라지고 송추계곡물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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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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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국립공원 정비사업 막바지… 송추수영장도 철거

16일 오후 경기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북한산국립공원 내 송추계곡에 장맛비로 불어난 계곡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수십 년간 계곡 주변에서 장사해 온 음식점 숙박업소 등은 생태계 보전을 위해 올해 말부터 모두 철거될 예정이다. 양주=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16일 오후 경기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북한산국립공원 내 송추계곡에 장맛비로 불어난 계곡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수십 년간 계곡 주변에서 장사해 온 음식점 숙박업소 등은 생태계 보전을 위해 올해 말부터 모두 철거될 예정이다. 양주=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이번 주말에 송추유원지 가자!”

매일 야근을 밥 먹듯 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가족에게 이렇게 외치면 집 안은 이내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잠 못 이루며 손꼽아 주말을 기다렸고 어머니는 먹을거리를 챙기느라 분주했다. 1970, 80년대 서울의 여느 가정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송추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중장년층에게는 여전히 송추유원지가 익숙하다. 남한산성유원지 등과 함께 서울 근교의 몇 안 되는 인기 나들이 장소였다. 수도권 주민들은 송추유원지를 찾아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도시락을 먹으며 피로를 풀었다.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 있었던 시설 중 하나가 바로 송추수영장이었다. 정식 이름은 ‘송추파라다이스수영장’.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1962년 서울의 모 대학이 만들었고 이후 민간업자가 넘겨받아 운영했다. 50년간 송추유원지의 상징이었던 파라다이스수영장은 최근 자연생태계 회복을 위해 철거됐다.

○ ‘송추유원지’ 풍경은 올해가 마지막

16일 오후 경기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송추계곡을 찾았다. 입구 쪽에 다가서자 계곡 오른편에 커다란 공사현장 가림판이 설치돼 있었다. 가림판 뒤로 굴착기 한 대가 부지런히 건축폐기물을 옮기고 있었다. 철거된 파라다이스수영장에서 나온 폐기물이다. 지금은 수영장 모습을 가늠하기조차 어렵지만 지난여름까지 정상적으로 운영됐던 수영장이다. 대형 물놀이시설이 속속 등장하면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쇠락했지만 추억을 앞세워 명맥을 유지했던 곳이다.

그러나 북한산국립공원 생태계 회복이라는 목적 아래 파라다이스수영장은 결국 사라졌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수영장 철거를 시작으로 송추계곡의 제 모습을 되찾기 위한 정비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약 5km에 이르는 계곡 주변에 들어선 음식점 숙박시설 등을 모두 철거하는 사업이다. 현재 운영하는 음식점이나 주택은 53가구, 143동에 이른다. 이 업소들은 올여름에는 영업을 하지만 앞으로 순차적으로 철거돼 계곡 입구 쪽에 별도로 조성되는 이주단지를 분양받아 옮겨가게 된다. 5만500m²(약 1만5000평)의 이주단지에는 음식점 등 상업시설과 주차장 공원 등이 들어선다.

송추계곡 정비는 북한산국립공원의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마지막 사업이다. 이에 앞서 1995년 정릉지구, 1999년 원도봉지구, 2011년 북한산성지구에서 정비사업이 진행됐다. 2014년 송추계곡 정비가 마무리되면 북한산은 국립공원으로서 완전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최승운 국립공원관리공단 공원시설부장은 “수영장 철거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계곡 주변 음식점과 주택을 이주시킬 계획”이라며 “난립한 상가들로 인한 계곡 오염 등 환경훼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주민들, 아쉬움 속 일부는 반대

수십 년간 살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송추계곡에서 38년간 목포식당을 운영해온 이주섭 씨(67) 역시 서운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 씨는 “40년 가까이 머물렀던 곳인데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 아니겠느냐”며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니 식당들도 변해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침도 여러 번 겪었지만 그래도 송추유원지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줬던 곳”이라며 “더 깨끗한 시설로 옮기고 새로운 메뉴와 즐길거리를 만들면 사람들이 찾아올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10여 가구의 세입자들이 철거에 따른 생계대책을 요구하고 있어 앞으로 보상 과정에서 갈등이 예상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올해 말까지 이주단지 조성을 완료한 뒤 분양 및 보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일부 반대하는 주민은 최대한 설득해 마찰을 줄일 방침이다.

철거가 무사히 끝나도 계곡 복원이 문제다. 현재 계곡 주변으로 낮게는 1∼2m, 높게는 3∼4m의 석축이 쌓여 있다. 이 석축까지 철거해 완전한 자연형 하천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과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일부만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완전 자연형 하천의 경우 물길이 넓어져 자칫 여름철 수해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임철진 국립공원관리공단 공원시설부 차장은 “건물 철거 이후 계곡 복원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며 “충분히 의견을 수렴한 뒤에 생태계 보호와 재해 예방을 모두 고려해 결론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송추 유원지#송추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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