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재동]자녀들의 ‘무상(無償)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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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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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기자
유재동 경제부 기자
내가 아는 J 씨는 지금까지 남한테 손 한 번 벌리지 않고 살아온 성실한 10년차 직장인이다. 서울에 사는 안정된 중산층으로 맞벌이를 해서 소득도 꽤 된다. 그런 그가 요즘 아주 엉뚱한 꿈에 부풀어 있다. 세상 돌아가는 걸 보니 앞으로는 자기 아들을 거의 공짜로 키울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두 살인 아이는 지금 어린이집을 무료로 다니고 있다. 작년만 해도 월 30만 원 이상을 꼬박꼬박 내왔는데 올해부터 2세까지는 소득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보육료를 지원해준단다. 다달이 수십 만 원의 공돈이 나온다는데 인터넷으로도 간편하게 신청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들은 내년에 세 살이 되지만 역시 걱정이 없다. 3∼4세에 대한 지원도 내년부터 전 계층으로 확대된다. 집권당이 ‘국민 행복’을 위해 약속한 거란다.

다섯 살이 되면 ‘누리과정’이라 불리는 공통보육과정이 기다린다. 당연히 소득과 관계없이 전액 무료다. 초등학교에 가면 점심은 무상(無償)급식을 받는다. 정치권이 ‘협조’만 잘 해주면 아침도 학교에서 공짜로 먹일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중학교까지는 수업료도 내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그 후에도 학비 걱정은 없어 보인다. 여야 정치인들이 장차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에 넣을 것 같다.

아들이 대학에 가도 큰 부담은 안 될 것이다. J 씨가 대학에 다닐 때는 등록금 때문에 학자금대출도 받고 휴학까지 생각해본 기억이 나지만 아들 세대는 그렇지 않다. 아마 정부가 등록금의 절반을 통 크게 지원해 줄 것이다. 일단은 ‘고작’ 반값등록금이지만 나중엔 지원이 더 커지지 않을까 점쳐본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도 사병 월급이 지금보다 몇 배로 불어날 것이다. 어차피 공짜로 밥 먹여주고 재워주는 거, 맘먹고 열심히만 모으면 수백만 원을 거머쥐고 나올 수 있다. 직장을 못 잡아 백수가 되더라도 아들이 손 벌릴 일은 없을 것이다. 취업준비 열심히 하라고 국가가 대신 용돈을 줄 것이다. 통신요금, 기름값도 어떻게든 깎아준다 했다. 또 다른 건 몰라도 공공주택 정도는 나라에서 넉넉하게 지어줄 거라 믿는다.

J 씨는 노후에 아들에게 짐이 될 일도 없다. 아프면 병원비의 10%만 내면 된다. 정치인들이 90%는 의료보험으로 해준다고 했다. 어쩌다 사업이 망해서 빚을 좀 졌다 해도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 결국엔 나라에서 탕감해줄 것이다. 일 좀 못해서 직장에서 잘려도 재취업 수당이 나온다. 은퇴하면 화끈한 노령연금이 기다린다. 심지어 ‘공공상조’를 통해 자기 장례식도 저렴하게 치를 수 있다니, 아들은 조의금을 그대로 주머니에 챙길 수 있을 것이다.

J 씨에게 “나라에서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대겠냐”고 물었더니 “그런 걱정일랑 붙들어 매라”고 했다. 그런 괘씸한 말을 하는 공무원이 있으면 국회의원들이 여의도에 한 번 불러다 윽박지르면 된단다. 그분들, 한 번 줬던 거 뺏을 정도로 야비한 분들이 아니다. ‘달러 빚을 내든, 새 돈을 찍어내든’ 서민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것이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면 대기업을 족치면 된다.

J 씨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스스로도 “조금 허황된 것 같긴 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일부는 이미 현실이 돼가고 있다. 보육료 지원으로만 벌써 100만 원이 넘는 돈을 굳혔으니 말이다. 그는 일단 이 돈으로 영어 특별활동을 시키고 유아용 도서전집도 새 걸로 사줄 생각이라며 웃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유난히 씁쓸해보였다. 그리고 정치권의 선심정책에 따른 재정위기로 요즘 휘청거리는 많은 나라들이 떠올랐다.

유재동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무상보육#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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