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심경수]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의 존립 기반

  • Array
  • 입력 2012년 7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심경수 한국헌법학회장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심경수 한국헌법학회장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비구름 바람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

삼백 예순 남은 일이/ 하늘 뜻 그대로였다

삼천 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 옛길에 새 걸음으로 발맞추리라

이 날은 대한민국 억만 년의 터다/ 대한민국 억만 년의 터’
정인보 선생이 제헌절을 기념해 만든 노래 가사다. 그중 ‘옛길에 새 걸음으로 발맞추리라’는 구절은 헌법제정을 문학적으로 절묘하게 표현해 감탄을 자아낸다.

오늘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지 64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한 뒤 2년여의 군정기간을 거쳐, 1948년 5월 10일 5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총선거가 실시됐고, 선출된 제헌국회가 제정한 헌법을 공포한 날이 바로 64년 전 오늘이다. 그 헌법에 의거해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게 됐으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대한민국 헌법이 설계한 대로 건축된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제헌헌법이 정부 수립보다 앞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그 이유는 국가권력은 헌법에서 설계한 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중요기관이 권력분립원칙에 입각해 견제와 균형이라는 긴장과 조화의 틀 속에서 작동돼야 하는 것도 다 헌법에서 설정해 놓은 하나의 트랙이 아닐 수 없다.

제헌헌법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왕조시대를 마감하고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을 여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왕이 내리는 어명 대신 국민의 손으로 만든 국가기본법이 바로 근대국가의 헌법이다. 따라서 우리의 제헌헌법은 광복 이후 우리 국민이 선택한 시대적 결정의 소산이다. 헌법은 국가권력의 조직과 행사, 국가과제 및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근본규범을 포괄하고 망라하는 국가의 기본법이다. 오늘날 현대국가 대부분의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권력이라는 2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1789년의 프랑스 인권선언에서 유래한다. ‘권리보장과 권력분립의 원리가 확보되지 아니한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는 프랑스 인권선언 제16조는 2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헌법의 개념정의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유와 평등, 민주와 복지가 중심 가치인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그랜드 디자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종북주의자로 지칭되는 정치 세력과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보여준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듯한 움직임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부정과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제헌절을 맞이해 정치인을 포함한 우리 국민 모두가 적어도 다음 4가지 헌법원리를 염두에 두면서 헌법전을 펼쳐보자. 첫째, 국민의 자기결정과 자기지배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 원리와 부수되는 선거제도와 정당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가. 둘째,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중심으로 한 자유권이 공익실현이라는 미명으로 필요 이상으로 제한되는 일은 없는가. 동시에 권리구제절차는 부족함이 없는가. 셋째,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어섰다는데 왜 살기는 더 어려워지고 영세 자영업자는 설자리가 없으며 취직하기는 어려운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사회국가원리,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가. 넷째, 침략전쟁의 금지가 무엇이며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고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평화국가원리). 또 케이팝(K-pop)을 비롯한 한류와 우리의 전통문화를 어떻게 연결시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것인가(문화국가원리). 분명 우리 헌법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심경수 한국헌법학회장·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헌헌법#대한민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