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사교육으로 점수 올릴 수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3일 18시 11분


코멘트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한국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성적을 사교육과 선행학습 결과라고 폄하한데 대해 교육계에서는 PISA의 본질과 특징조차 모르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교과 지식이 아니라 사회생활에 필요한 읽기, 수학, 과학 능력을 평가하므로 주입식 사교육으로는 점수를 올릴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교육전문가들은 한국교육에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세계적으로 부러워하는 한국의 평가결과를 외국인 전문가 앞에서 깍아내리는 인식 자체가 비교육적이라고 말했다.

●실생활과 관련된 문항이 많아

PISA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관으로 1998년 시작됐다. 3년마다 읽기, 수학, 과학 영역을 평가한다. 객관성을 위해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참가국이 학생들을 직접 선정한다. 표본이 되는 수험생이 특정 지역에 쏠리지 않도록 전국 단위로 학교를 고른다.
가장 최근의 평가인 PISA2009에는 65개국에서 47만 명이 참여했다. 한국의 경우 대도시, 중소도시, 읍면도시에서 157개 학교를 골랐다. 만 15세인 중학교 3학년과 고교 1학년생 4990명이 평가에 응했다.
기출 문제 중 일부는 국가별 시행기관에 공개한다. 한국에서의 평가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기출문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이라면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이 없이도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수준이다.
읽기는 대부분 지문에 답이 포함돼 있다. 글을 잘 독해하는 능력을 평가하자는 취지다. OECD 역시 실생활에 필요한 문해력(literacy)을 본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벌이 꿀을 채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문을 주고 벌이 왜 춤을 추는지, 꿀이 있는 장소가 멀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묻는다.
수학 영역에는 다양한 상황이나 지도를 주는 문제가 많다.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 환율을 계산하거나, 여러 도시 사이의 최단 거리를 짜도록 하는 식이다. 서울 중랑구의 A고 수학교사는 "PISA의 수학문제를 푸는 데는 선행학습이 아닌 사고력이 필요하다. 수학적 내용을 현장의 문제 상황에 적용하느냐를 보니까 중학교 1학년이 쉽게 풀만한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과학은 지문을 활용해 푸는 문제와 지문 없이 교과지식을 묻는 문제가 섞여 있다. 강원 평창군 봉평고의 박광서 교사는 "교과서 내용을 일반적인 생활에 응용할 수 있으면 풀 수 있는 수준이다. 중학교 3학년 교과과정을 기준으로 보면 선행학습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새 방식으로도 한국학생들이 우수

PISA는 평가 영역을 부정기적으로 추가한다. PISA 2003에는 문제해결 소양이라는 영역을, PISA 2009에는 디지털문해 능력이라는 영역을 새로 넣었다. 둘 다 사고력, 추론능력, 독해력을 요구한다. 사교육이 해답을 주기 어렵다.
한국 학생들은 어느 경우에도 성취도가 뛰어났다. PISA 2009의 디지털문해능력 순위는 568점으로 1위였다. 전체 평균(499점) 및 2위(호주 537점)보다 월등히 높다. 이 시험은 수시로 뜨는 컴퓨터 팝업창에서 정보를 찾아서 문제를 푸는 식이었다.
PISA 2003의 문제해결능력을 보는 문항은 범교과적으로 나왔다. 도서관 규칙을 해석해 학생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파악하거나, 남녀학생이 합숙을 할 때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방을 배정하라는 생활 밀착형 문제다. 여기서 한국 학생이 1위였다.
김경희 평가원 박사는 "두 시험은 유형이 새롭고 복합적이라서 진보된 시험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여기서도 한국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문제를 직접 봤다면 사교육을 통해 성적이 오른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PISA의 성과를 깎아 내렸다는 얘기를 듣고 교사와 학부모들은 '전국 꼴찌'인 서울의 학업성취도가 떠올랐다고 비판했다.
서울은 지난해 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의 기초학력 미달비율이 모두 5.0%로 16개 시·도교육청 가운데서 가장 높았다.
중3의 미달비율이 가장 낮은 충북(2.1%)과 고2의 미달비율이 가장 낮은 광주·대전(1.4%)에 비하면 2~3배 이상 높았다. 초등학교 6학년 역시 미달비율이 1.0%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곽 교육감이 2년 전 취임하면서 "기초학력 보장은 공교육의 무한책임"이라고 강조했지만 학업성취도와 관련해 서울교육청은 아직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도형기자 dodo@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