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000m서 정체사태 ‘예고된 에베레스트 人災’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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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200명 줄서서 등정”

8명 참변 부른 ‘에베레스트 떼등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죽음의 산’으로 바뀌고 있다. 네팔 당국이 무분별하게 입산을 허가하면서 ‘안전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5월 19일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에 나섰던 국내외 산악인 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진은 전날 해발 7500m 지점에서 오영훈 서울대 농생대 OB산악회 대장이 촬영한 것으로 각국의 등반대 행렬 (200여 명으로 추정)이 에베레스트의 캠프3(해발 7200m)을 떠나 캠프4(8000m)로 향하는 모습이다. 오영훈 대장 제공
8명 참변 부른 ‘에베레스트 떼등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죽음의 산’으로 바뀌고 있다. 네팔 당국이 무분별하게 입산을 허가하면서 ‘안전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5월 19일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에 나섰던 국내외 산악인 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진은 전날 해발 7500m 지점에서 오영훈 서울대 농생대 OB산악회 대장이 촬영한 것으로 각국의 등반대 행렬 (200여 명으로 추정)이 에베레스트의 캠프3(해발 7200m)을 떠나 캠프4(8000m)로 향하는 모습이다. 오영훈 대장 제공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50m) 등정은 모든 산악인의 꿈이다. 하지만 좀처럼 품을 허락하지 않는 지구의 지붕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이젠 사고가 예견되는 ‘죽음의 지대’가 될 가능성이 커져 버렸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67)의 말처럼 네팔 에베레스트에선 요즘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5월 19일에는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각국 등반대 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1996년 5월 14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사건 이후 최악의 인명 사고였다. 희생자 가운데는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등정에 나선 대전 충남고 OB산악회 소속의 송원빈 씨(44)도 있었다.

지난달 사고 전날 모습 5월 18일 각국의 에베레스트 등반대 수십 명이 캠프3(해발 7200m)과 캠프4(8000m) 사이의 보기에도 아찔한 제네바 스퍼(바위나 산의 돌출부)를 지나고 있다. 오영훈 서울대 농생대 OB산악회 대장이 촬영한 이날은 평온한 날씨였지만 이튿날 악천후로 바뀌면서 국내외 산악인 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은 최근 이란 타브리즈에서 열린 아시아 산악연맹 이사회에서 네팔등산협회 측에 “시즌마다 입산을 허가하는 원정대 수를 제한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오영훈 대장 제공
지난달 사고 전날 모습 5월 18일 각국의 에베레스트 등반대 수십 명이 캠프3(해발 7200m)과 캠프4(8000m) 사이의 보기에도 아찔한 제네바 스퍼(바위나 산의 돌출부)를 지나고 있다. 오영훈 서울대 농생대 OB산악회 대장이 촬영한 이날은 평온한 날씨였지만 이튿날 악천후로 바뀌면서 국내외 산악인 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은 최근 이란 타브리즈에서 열린 아시아 산악연맹 이사회에서 네팔등산협회 측에 “시즌마다 입산을 허가하는 원정대 수를 제한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오영훈 대장 제공
○ 에베레스트의 불편한 진실

국내외 산악계는 이번 사고를 ‘예견된 인재(人災)’로 받아들이고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등반대와 빈도가 잦아지는 히말라야 기상이변으로 인해 잠재된 사고라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당시 정상 등정에 성공했던 오영훈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OB산악회 대장(34)에게서 단독 입수한 사진을 보면 이날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는 셰르파를 포함해 수백 명이 몰렸다. 사고 며칠 전까지 기상 악화로 정상 부근에 대기하고 있던 팀들이 날씨가 좋아지자 한꺼번에 정상 정복에 나선 것이다. 오 대장은 “우리 팀은 18일 저녁에 출발해 19일 새벽에 정상을 밟았다. 같은 날 200명 정도가 함께 정상 정복에 나선 것 같다. 이 정도 인원은 전례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네팔 관광성이 10만 달러의 입산료만 내면 무제한적으로 입산을 허가해 준 게 가장 큰 사고 원인이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고(故) 고상돈이 1977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자 세계에서 8번째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할 때만 해도 그해 입산 허가를 받은 팀은 한국밖에 없었다. 1980년대 들어 루트당 한 팀에만 허가를 내주더니 1990년 중반부터는 무제한으로 허가를 내주기 시작했다. 여기에 돈을 받고 등반을 도와주는 상업 등반대까지 난립하면서 에베레스트는 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산이 되어 버렸다.

한 산악인은 “8000m 이상 루트는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힘든 난코스가 이어진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정체될 수밖에 없다. 기다리는 동안 산소가 떨어지고 체력도 급격히 바닥나면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했다. 고 송원빈 대원도 해발 8600m 부근의 정체지역에서 산소 부족으로 정신을 잃은 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의 자연 훼손도 심각하다. 사람들의 배설물에다 산소통 등이 버려져 있고 사고를 당한 시신도 곳곳에 방치되어 있다는 게 산악인들의 증언이다.

[채널A 영상] ‘히말라야 완등’ 엄홍길 대장 “후배6명-셰르파 4명 잃고…”

○ “에베레스트 입산 허가 제한해야”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을 겸하고 있는 이 회장은 최근 이란 타브리즈에서 열린 아시아산악연맹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이 회장은 회의에 참가한 8개 이사국 대표단과 함께 네팔등산협회 대표단에게 “한 시즌 입산 허가 원정대 수를 제한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고 네팔 측도 이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문제는 입산 허가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버는 네팔 정부가 태도를 바꿀지 여부다. 아시아산악연맹은 국제산악연맹과 공조해 네팔 정부에 시즌별 원정대 수 제한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장은 “많은 사람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려고 할수록 사고의 잠재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등산은 집에서 출발해 집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에베레스트#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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