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학생연대는 지난해 ‘대학생 북한전문가 아카데미’ 전체 사업비 2500만 원 가운데 1500만 원을 서울시로부터 지원받았다. 대학생을 상대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강좌를 두 차례 개최했다. 강의 내용은 북한의 3대 세습, 정치범수용소 생활 등 북한 체제의 실상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올해는 이와 맞는 공모 분야가 없어 ‘북한이탈주민의 적응을 돕는 문화 교육’으로 바꿔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결국 올해 진행된 ‘대학생 북한전문가 아카데미’는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북한이탈주민 청소년을 대상으로 외국어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탈북자동지회 역시 시로부터 지원받던 예산 1500만 원이 끊겨 올해는 사업 자체를 포기했다. 일반 시민이 대북방송 제작과정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열린북한은 자부담으로 사업을 끌고 갈 생각이지만 올해 규모를 확대하려던 계획은 접어야 했다.
“지원할 공모 분야가 없어 지원을 포기했다”는 단체의 주장에 대해 서울시는 12일 “탈북자 지원, 안보교육 등의 사업은 자유제안 분야로 신청이 가능했던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지원 대상 138개 중 96개가 자유제안 분야에서 선정될 정도로 누구나 신청할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해영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은 “서울시의 해명은 공모사업의 속성을 무시한 발언”이라며 “지정 항목을 벗어나 지원하면 공모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데도 자유제안으로 지원하면 된다고 하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정태 한국통일문화진흥회장은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뒤 갑자기 안보 분야가 없어져 우리가 하던 통일 교육을 어디다 넣어야 할지 몰라 탈락할 게 뻔하다는 생각에 지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근배 열린북한 기획팀장은 “몇 년간 이어졌던 통일·안보 분야가 올해 없어지니 ‘지원 안 해주려고 이렇게 바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 조명철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12일 성명을 내고 “서울시의 차별적 행태는 북한인권 운동을 퇴보시키고 북한 주민 고통을 가중시키는 무책임한 행위”라며 “북한 인권단체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해 사업을 펼치기 힘든 단체를 돕자고 만든 제도인데도 이를 외면한 채 박 시장과 밀접한 단체에 신규 지원이 집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성민 한국남북청소년교류평화연대 사무총장은 “작년보다 짜임새 있게 준비해 신청했는데 떨어졌다”며 “우리처럼 영세한 단체를 돕자고 만든 제도인데 사업을 크게 벌일 수 있는 ‘희망제작소’ 같은 단체에 시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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