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간첩혐의 비전향장기수 출신 거주지 옮겨도 경찰은 캄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 주소지인 음성 떠나 사실상 서울 거주… ‘보호관찰’ 구멍

북한에 군사기밀정보를 넘기려 한 혐의로 구속된 비전향 장기수 출신 대북사업가 이모 씨(74)가 2008년 이후 서울에 거주했지만 관할 경찰서는 이런 사실을 이 씨가 체포된 뒤에야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3일 동아일보 취재 결과 이 씨는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충북 음성군이지만 부인과 이혼하고 2008년부터는 중학교 1, 2학년인 두 딸과 함께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빌라 3층에 거주해 왔다. 이 씨의 지인들은 “두 딸이 아직 어려 이 씨도 음성 집을 떠나 사실상 딸들과 함께 서울 집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이 씨가 살던 동네의 세탁소 주인도 이 씨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충북 음성경찰서나 성북구를 관할하는 서울 종암경찰서 모두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보호관찰법에 따르면 이 씨와 같은 비전향 장기수나 국가보안법 위반자 등 보호관찰 대상자는 집을 열흘 이상 비우거나 주소지를 옮길 경우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

종암경찰서는 “이 씨가 우리 관할 지역에 전입신고를 했다는 보고를 충북지방경찰청으로부터 5월 16일에 받았다. 이 씨가 5월 7일 전입신고를 한 것으로 돼 있어 계속 통화를 시도해 봤는데 전화를 안 받았다. 알고 보니 이 씨는 이미 서울지방경찰청에 체포된 뒤였다”고 설명했다. 이 씨의 동향을 파악했어야 할 음성경찰서도 이 씨가 사실상 서울에 거주했던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음성경찰서 관계자는 “자진신고제이기 때문에 이 씨가 먼저 우리에게 알려오지 않는 이상 이 씨의 동향을 늘 파악하고 있을 수는 없다”며 “우리도 이 씨가 간첩죄를 저질러 구속된 사실을 언론 보도를 보고야 알았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해 7월 사업차 중국 단둥(丹東)으로 떠난 뒤 올해 초까지 귀국하지 않았다. 음성경찰서는 중국에 머물고 있던 이 씨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올 것을 독촉했으나 이 씨는 거부했다. 음성경찰서 측은 “이 씨가 아직 일이 안 끝났고 (대북사업을 해도 좋다고) 통일부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니 상관없다고 주장했다”며 “이 씨가 끝내 돌아오지 않아 경찰 상급기관과 국가정보원 법무부에 관련 사실을 알렸다”고 했다. 이 씨는 올해 초에야 귀국했다.

한편 이 씨가 세운 대북사업체 D무역에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전무로 함께 일해 온 김모 씨(53·여)는 1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씨는 늘 입버릇처럼 돈이 없다는 말만 했다. 돈 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어 보이던 사람이라 간첩 활동을 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또 “이 씨는 말이 없고 조용한 사람”이라며 “활동적인 성격이 아니라 친구도 별로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씨가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가 있던 단둥 지역으로 많게는 한 달에 두 번씩도 출장을 다니곤 했다”며 “하지만 이 씨가 워낙 조심스럽게 사업을 벌였기 때문에 평양에 함께 출장을 갔을 때도 북한 측과 따로 접촉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편 북한의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3일 비전향 장기수 출신 이모 씨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 장치 등을 북한에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건에 대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반북 모략소동”이라고 주장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간첩#비전향장기수#보호관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