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수행평가를 대신… 엄마 창의력만 느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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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서 차지 비중 높아져… 부모가 떠맡는 경우 많아
과외교사에게 부탁하기도

수학 과외교사 홍모 씨(29)는 자신이 가르치는 서울 도봉구 A고의 1학년 학생에게서 문제를 풀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내용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단순한 참고서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서 만들어 제출 시간까지 명시한 수행평가 문제지였다.

1학기 내신에서 수행평가가 15%를 차지하니 도와달라는 얘기였다. 홍 씨는 잠시 고민했지만 “고교 내신 점수는 대학 입시에도 반영되므로 수행평가는 가능한 한 만점을 받아야 한다. 학원에서 해오는 아이도 있다”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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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경우 올해부터 중고교 내신에서 수행평가와 서술형 평가를 더한 비중이 30% 이상을 차지한다. 지필고사 위주의 점수 경쟁을 억제해 사교육을 줄이고 과정 중심의 평가를 하자는 취지이지만 실제로는 부모나 학원강사가 대신 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부 한모 씨(43)는 올 초 서울 은평구 B중 2학년인 아들의 과학수행 평가를 대신 했다. 실제 생활에 활용할 만한 발명품을 만드는 과제. 한 씨는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많은데도 너무 어려운 과제라 직접 해결하기 버거웠다. 과제로 나오는 수행평가는 어머니 몫으로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학업성적관리종합방안’은 “과제물 위주의 수행평가를 지양해 표절이나 부정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A고처럼 수행평가를 숙제로 내면 자녀의 학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부모나 학원강사 또는 과외교사가 떠맡기도 한다.

중간·기말고사와 함께 치르는 서술형 평가 역시 단답식 문제가 상당수여서 사고력과 창의력을 평가한다는 본래의 뜻을 살리지 못한다. 서울 광진구 C중은 지난해 3학년 2학기 수학 기말고사에서 총 30점짜리 서술형 문항으로 6개를 냈다. 대부분 선분의 길이와 각의 크기를 구하는 단답식 문항이었다. 하늘교육 노원센터 박현주 부원장은 “학교 시험을 분석해보면 단답형 주관식이나 단순한 빈칸 채우기 문항을 서술형으로 출제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제 서술형 문항은 한두 문제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서울 동대문구 D중 교장 역시 “출제와 채점의 어려움 때문에 일부 서술형 문항은 기존 주관식 문항과 다르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평가에 대한 인식이나 전문성이 부족해 교육현장에서 수행평가와 서술형 평가의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 학교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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