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그날밤 집-상가 탐문”… 137곳중 133곳 “경찰 안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수원 피살여성’ 경찰 수색 어땠기에… 본보, 신고-범행 현장 주변 조사해보니

경기 수원시 20대 여성 피살 사건과 관련해 112 신고 직후 이튿날 새벽까지 현장 주변에서 경찰의 탐문 수사는 사실상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경찰이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신고자’를 절박하게 찾아다녔다고 증언하는 주민도 없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현장 주변 상가와 주택 317곳을 직접 탐문 조사했다. 4일 1명, 5일 4명, 6일 8명의 기자가 경찰이 탐문 조사를 벌였다고 한 핵심 지역을 직접 확인했다. 대상은 피해자의 휴대전화가 포착된 기지국에서 반경 300m 안에 있는 주택과 상가다.

취재팀이 직접 확인한 곳은 휴대전화 기지국과 범행 장소에 가장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주택 277곳, 상가 40곳 등 총 317곳이다. 취재에 응한 곳은 주택 102곳, 상가가 35곳 등 137곳이다. 이 중 피해자가 112 신고를 한 직후부터 범행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다음 날 오전 7시 사이에 경찰관이 찾아왔다고 밝힌 곳은 단 4곳에 불과했다. 모두 밤늦게 문을 닫는 소형마트들이었다. 다른 주택 및 상가 28곳은 2일 오전 7시 이후에 경찰의 탐문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결국 경찰의 제대로 된 탐문 조사는 신고 뒤 8시간이나 지난 이튿날 오전 7시 이후에 이뤄진 것이다. 취재에 응한 주민 대부분은 이미 밤이 늦어 잠을 자고 있었다는 대답이 많았지만 일부는 자정 이후로도 불을 켜놓은 채 깨어 있었다고 말했다. 김모 씨(67·여)는 “그날도 TV를 보고 오전 1시 넘어서 잤는데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 경찰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상가 주인들도 대부분 경찰의 탐문 조사가 없었다고 전했다. 범행 현장과 가까운 A호프집 주인은 “밤 12시가 훨씬 넘어서 문을 닫았는데 경찰이 오지도 않았다”며 “다만, 문을 닫고 나와 보니 순찰차가 지나다니는 것을 봤다”고 했다.

경찰의 탐문 조사는 대부분 이튿날 날이 밝은 뒤에야 시작됐다. 오전 7시 가까이 돼 강력팀 35명 전원이 투입되면서 실질적인 탐문 조사가 이뤄진 것이다. 범행 현장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사는 최모 씨(47)는 “다음 날(2일) 오전 9시경 길에서 경찰들을 만났는데 ‘큰 소리 안 났느냐, 싸우는 소리 못 들었느냐’고 물어봤을 뿐”이라고 전했다.

사건 발생 당일과 이튿날 새벽까지 경찰의 탐문 조사를 받은 주민이 이처럼 적었던 것은 탐문 조사에 투입된 경찰관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신고 직후 투입한 인원은 단 5명. 사건 발생 3시간 반이 지난 뒤에야 겨우 10명이 추가됐을 뿐이다. 지동 기지국 반경 500m 이내에 약 5000가구가 산다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본보 취재진이 실제 주변 지역을 탐문 방식으로 둘러본 결과 보통 1시간에 1인당 평균 30가구 안팎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했다면 100명 이상이 투입돼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탐문 조사 방식도 문제다. 신고 내용의 심각성보다 심야 조사의 어려움 때문에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골목길과 공터 등 성폭행이 이뤄질 만한 곳을 보고 다녔지만 주택은 밤이 늦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탐문 조사를 벌이지 않았다. 불이 켜진 곳을 찾았지만 그저 벽이나 현관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엿듣는 ‘귀 대기 탐문’ 수준이었다.

7분이 넘는 시간 동안 112 신고를 통해 주택의 집안에서 일어난 피해자의 위급한 상황이 생생하게 전해진 것을 감안하면 경찰의 탐문 방식이 지나치게 안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의 112 신고 시스템 자체는 선진국 못지않은 수준이지만 이를 운영하는 사람의 전문성이 문제”라며 “최초 신고 내용이 현장 출동 경찰관에게 정확히 전달되도록 의사소통 과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수원여성피살사건#경찰#탐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