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비교는 그만 좀",,,명절이 괴로운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4일 13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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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가족·친지들과 만나 회포를 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그러나 이것도 한때, 자신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친척을 만나게 되면 어느덧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되곤 한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취업 여부를 묻는 친척들 탓에 급체에 걸리기 일쑤다. 취업 준비생 김모(33) 씨 역시 사촌동생과 비교를 당할 때마다 자괴감에 빠진다.

김 씨는 "명절에 가족들이 모일 때면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사촌동생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며 "그저 그런 대학교에 그저 그런 스펙을 지니고 있는 내게 사촌 동생은 이 세상 모든 걸 가진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채 재시험을 치르는 이들에게 좋은 대학에 진학한 친척은 눈엣가시다.

4수생 박모(24) 씨는 "우리 외가 식구들은 다들 머리가 좋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명문대 출신들이 많다"며 "이 와중에 4수까지 하면서 도대체 어느 대학을 가려고 그러냐는 친척들의 얘길 들을 때면 별 어려움 없이 명문대에 척척 들어간 사촌들이 얄밉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아직 결혼 문턱을 넘지 못한 노총각·노처녀들에게 설 명절은 참으로 넘기 힘든 높다란 문턱이다.

미혼인 장모(42·여) 씨는 "마음처럼 해결되지 않는 결혼 문제 때문에 요즘은 결혼 후 집안 살림에만 몰두하고 있는 조카가 부럽기만 하다"며 "살도 많이 찌고 예전처럼 예쁜 옷도 못 입는 조카지만 지금 내 눈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고백했다.

외모 콤플렉스 탓에 친척들 앞에 나서길 꺼리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학업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소하던 여고생 장모(17) 양도 부쩍 늘어난 몸무게 탓에 자신감을 잃었다. 예전 명절 땐 자신에게 예쁘다고 칭찬했던 친척들도 이제는 중학교에 다니는 사촌 동생들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장 양은 "요즘 친척들이 나를 보면 '너는 위로 자라는 게 아니라 자꾸 옆으로만 자라는 것 같다'고 한다"며 "살이 좀 쪘다고 사촌동생들과 비교하는 친척들이 너무 얄밉고 날씬한 동생들에게도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고 털어놨다.

자신과 자식을 비교하는 친척들 때문에 명절이 싫어져버린 부모들도 있다.

해외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소싯적 천재 소리까지 들었던 조모(55) 씨는 "지방 사립대에 다니는 아들이 명절만 되면 친척들로부터 '왜 너는 공부를 아버지만큼 못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며 "'너는 누구를 닮았냐' '아버지의 반의반만이라도 해라' 같은 얘기에 시달리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어쩔 땐 너무 미안해서 명절 자체가 싫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설날마다 다른 집 자식들과 자기 자식을 비교하며 서운함을 토로하는 부모들도 가끔 있다.

남편을 여의고 혼자 5남매를 키운 황모(75·여) 씨는 "나이를 먹어서도 자식들에게 뭔가를 바라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얼마 전 윗집 할머니가 자식들한테서 전동 휠체어를 선물 받았단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더라"며 "솔직히 요즘엔 자식들을 보면 서운한 마음이 앞선다"고 고백했다.

즐거워야 마땅할 설 명절이 앞서 소개한 사례들처럼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프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질투의 장으로 변질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남과 비교하길 즐기는 한국사회 특유의 집단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이은경 한국심리학회 홍보이사는 "작은 국토 면적과 과도한 인구 밀도에 적응해온 탓에 한국인의 내면에는 그 어떤 민족에게서도 볼 수 없는 치열한 경쟁의식이 잠재돼있다"며 "따라서 무언가를 얻지 못했을 때 느끼는 '보상심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 열등감이 생기고 심한 경우 소외감까지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만큼 사회가 각박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뜻"이라며 "지금 우리 사회는 나의 부족함을 훨씬 자주, 그리고 더 잘 드러나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단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부터 불행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김민식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같은 회색 도형이라도 흰색 배경에 있을 때보다 검은색 배경에 있을 때 더 밝아 보인다"며 "우리도 자신의 처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불행해진다"고 설명했다.

남과 비교하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명절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다.

곽금주 교수는 "자기 발전을 위한 시간을 갖고 그것을 즐기는 태도가 중요하다"며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해서 스스로가 성숙됐을 때 내 가족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민식 교수도 "현재 자신이 가진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나아가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에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뉴시스·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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